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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완성차 공룡’ 빅딜 실패한 까닭은?…각국 일자리 셈법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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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의 탄생을 막은 건 세계 경제 침체에 따른 각국의 '일자리'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르노(왼쪽)와 FCA의 합병 논의는 11일만에 결렬됐다. [EPA·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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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완성차 공룡 탄생을 막았다’

이탈리아-미국계 완성차 업체인 피아트 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르노의 합병 논의가 좌초된 것은 ‘일자리’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국 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각국의 셈법 때문이란 의미다.

로이터통신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재정경제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르노와 FCA의 합병안)은 사업성과 일자리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어려운 문제”라고 전했다.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FCA의 공식 합병 제안이 나온 직후에도 “두 회사가 합병하더라도 프랑스 내 일자리와 설비는 유지돼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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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는 르노와 FCA 합병 과정에서 자국 내 일자리 축소에 거부감을 보였다.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장관은 "프랑스 내 일자리와 설비가 유지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르메르 장관이 지난 5월 철강 노조와 면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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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와 FCA가 합병하면 연간 글로벌 판매량(2018년 기준)은 870만대로 늘어난다. 여기에 르노와 동맹(얼라이언스) 관계인 일본 닛산·미쓰비시의 판매량을 더하면 연간 1500만대를 넘게 파는 ‘완성차 공룡’이 될 수 있었다.

‘빅 딜’의 발목을 잡은 건 글로벌 경기 하락과 자동차 산업의 부진, 그리고 고용 문제에 민감한 각국 정부의 서로 다른 입장이었다. 도미니크 세나르 르노그룹 회장은 지난달 28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월례 이사회에 참석하며 합병을 서둘렀지만 일본 측 파트너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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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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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카와 히로토 일본 닛산 CEO는 “르노와 FCA 합병 계획은 닛산과 르노의 오랜 동맹 구조에 큰 변화를 부르는 것이며 양사 관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회사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관계에 대해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등한 경영권 참여가 보장되지 않으면 동참하기 어렵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지난해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통합 회장을 전격 구속한 일본 정부 역시 미온적 반응을 나타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 정부와 닛산은 합병이 성사됐을 때 생산시설과 연구·개발(R&D) 인력이 통합될 것을 우려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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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최고경영자(CEO)는 르노-FCA 합병에 대해 "르노와 닛산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지난 5월 사이카와 CEO가 기자회견하는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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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A는 통합법인의 본사를 네덜란드에서 프랑스로 옮기겠다는 추가 제안까지 했지만 4~5일 열린 르노 이사회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결국 합병 제안을 거둬들였다. 블룸버그통신은 “합병 논의가 서로 책임을 돌리는 ‘비난 게임(blame game)’으로 끝났다”며 “르노 대주주인 프랑스 정부와 피아트 모두 ‘재협상의 문이 열려 있다’고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논의가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세계 각국, 자동차發 일자리 감소 공포

완성차 업체들이 ‘합종연횡’을 도모하는 건 세계 자동차 시장이 격변기를 맞고 있어서다. 내연기관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환경규제·미래차 개발·공유경제의 확대·무역전쟁 등 악재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6일(현지시간) 에릭 고든 미시간대 로스경제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해 “지난 100년간 목격한 가장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알릭스 파트너스는 주요 자동차 기업들이 앞으로 5년 동안 자율주행기술 기반의 전기차를 개발하는 데에만 4000억달러(약 473조원)을 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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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앞세워 수입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을 줄이려는 것도 자국 내 생산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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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주요 국가들이 자국의 일자리 보전을 위해 강력한 보호무역 기조를 보인다는 점이다. 자동차산업은 고용유발 효과가 높아 각국의 고용유지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안보산업’으로까지 여겨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문화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내세워 자동차 수입을 막으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노딜 브렉시트’(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것) 우려가 높아지면서 영국에 생산설비를 둔 완성차 업체들의 탈출이 줄을 잇고 있다. 일본 혼다가 2021년 스윈던 공장을 폐쇄하기로 한 데 이어 미국 포드도 2020년 9월까지 웨일스 지역의 브리젠드 엔진공장을 문 닫기로 했다. 닛산 역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엑스트레일’ 신형모델의 선덜랜드 공장 생산계획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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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대 노동조합인 유나이트 더 유니언의 렌 맥클러스키 사무총장이 지난달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혼다의 스윈던 공장 폐쇄 결정 반대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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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을 보유한 중국도 자동차 산업 살리기에 나섰다. 7일 중국 언론들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각 지방정부에 신에너지(친환경) 차량에 대한 구매제한 정책을 모두 없앨 것을 지시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20년 만에 자동차 판매가 감소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조치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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