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봉수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화웨이 퇴출 정책이 안팎에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9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셀 보우트 백악관 예산관리실장 대행은 지난 4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등 미 의회 의원 9명에게 편지를 보내 지난해부터 발효된 2019회계연도 국방수권법의 핵심 조항 적용 유예 기간 연장을 요구했다. 해당 법안은 국가 안보 저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와 ZTE 등 중국 통신기업들의 기술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정부 및 기관, 연방정부 물품 납품 업체, 연방정부 보조금 수급 업체 등은 화웨이 등과의 거래가 금지된다.
문제는 현재 미 정부 조달 물품을 공급하는 회사 대부분이 화웨이 등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조항이 실행될 경우 정부 조달 물품 입찰에 참가할 수 있는 기업의 수는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값싼 부품을 사용해온 지방의 영세 업체들 입장에선 상대적인 불이익도 우려된다.
보트 대행은 현행 2년인 유예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그는 "기업들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면서 "국가 안보에 따른 제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많은 관계자로부터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기업들의 화웨이 퇴출이 잇따르는 가운데 정작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관료로부터 반발이 나왔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WSJ는 "행정부 고위 관료의 이 같은 반응은 기업들에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하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6일 트럼프 대통령의 전날 지시에 따라 화웨이 및 68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포함해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나흘 후인 같은 달 20일 "기존 제품 및 서비스 유지ㆍ보수에 한해 3개월간 거래 제한 조치를 유예한다"는 보완 조치를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제재 조치에 미국 기업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도 지난 7일 2000억달러(약 240조원) 규모의 대(對)중국 관세 인상(10%→25%) 품목 중 일부의 적용 시한을 이달 1일에서 오는 15일까지로 연장한다고 공고했다. 부과 시점인 지난달 10일 이전 수입된 중국산 상품들이 아직 미국 내에 반입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면서 수입업체들의 반발이 일었기 때문이다.
모바일 폰 운영체계 '안드로이드'를 화웨이에 공급해온 구글도 최근 고위 경영진이 미 상무부 등에 접촉해 "제재가 오히려 국가 안보를 저해할 수 있다"며 예외 조치 확대 또는 전면 면제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가 유사 운영체계를 개발해 사용할 경우 해킹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미국을 포함한 화웨이 사용자들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중동 최대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화웨이 제재 불참을 선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사우디의 압둘라 빈 아메르 알-사와하 통신정보기술장관은 지난 8~9일 일본에서 열린 G20 무역ㆍ디지털 경제장관 회의에 참석해 5G(5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을 포함한 사우디 통신망에서 화웨이 제품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주요 동맹국들을 상대로 화웨이 제재 대열에 동참을 요구해왔다.
뉴욕=김봉수 특파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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