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8 (금)

이슈 고유정 전 남편 살해 사건

고유정 '조작 문자'에 낚인 경찰…범행 전후 CCTV도 유족이 찾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제주 전(前) 남편 펜션 살해 사건’ 수사 초기에 경찰이 피의자 고유정(36·사진)에게 속아 엉뚱한 장소를 수색하는데 하루 이상을 낭비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피해자 유족이 사건이 발생한 제주의 한 펜션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을 직접 찾아줬고, 피의자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까지 수사 요청했던 것과 맞물려 경찰의 부실수사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제주동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찰은 고유정의 전 남편 강모(36)씨의 유족이 실종 신고한 지난달 27일 밤부터 다음날 오후 1시까지 강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제주시 이도1동을 중심으로 수색에 나섰다. 이는 강씨가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날부터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강씨의 휴대전화 신호는 고유정이 보낸 ‘조작 문자’였다. 경찰에 따르면 고유정은 지난달 27일 오후 4시쯤 강씨 휴대전화로 ‘취업도 해야 하니 (성폭행 혐의로)고소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자신에게 보냈다. 고유정은 경찰에서 "강씨가 성폭행하려 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해왔다. 경찰은 고유정이 이미 살해된 전 남편 강씨가 살아있는 것처럼 속이기 위해 이런 내용의 문자를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유정은 지난달 25일 강씨와 함께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에 입실했고, 입실 당일 강씨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유정은 지난달 27일 펜션에서 퇴실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고유정과 통화로만 사실확인을 하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박기남 제주동부경찰서 서장은 지난 9일 언론 브리핑에서 "사건 초기 ‘실종 사건’이었기 때문에 (당시 피해자 휴대전화의) 최종 기지국 신호를 중심으로 수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조선일보

지난달 22일 피의자 고유정이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흉기와 청소용품을 계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은 고유정이 훼손한 시신을 완도행 여객선에 싣고 제주도를 빠져나가고 다음날인 지난달 29일에서야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이마저도 유족이 사건이 발생한 펜션 인근 주택 CCTV영상을 확인한 뒤 경찰에 알려준 뒤였다. 해당 영상에는 고유정이 지난달 25일 오후 피해자와 함께 펜션에 들어간 뒤, 이틀 후 홀로 빠져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박 서장도 언론 브리핑에서 "(지난달) 29일이 돼서야 실종 신고자가 고유정의 평소 폭력 성향 등을 얘기하고 유가족이 확인해 달라고 한 CCTV에서 수상한 점이 발견되자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처음 접수된게 성인 가출과 자살 의심 등의 내용이었기 때문에 (살인사건을) 이렇게 예견할 수 있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경찰은 27일 밤 제주시의 한 마트 주차장에 피해자의 모닝 차량이 사흘째 그대로 세워져 있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이 블랙박스 영상조차 살피지 않다가 다음날 유가족의 요청으로 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고유정은 제주항에서 완도항 항로,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부친 소유의 집 인근 등에 시신을 유기했다. 또 경찰은 지난 5일 피해자 유해 일부로 추정되는 뼛조각이 인천시 서구 재활용품업체에서 찾았다. 하지만 소각장에서 500도~600도로 고열 처리된 뒤 3㎝가량의 조각 상태로 발견된 뼛조각의 유전자(DNA)가 이미 훼손됐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지난 8일엔 피해자가 살던 지역주민 50여명이 경찰의 부실수사에 항의하는 집회를 제주동부경찰서 앞에서 열었다.

현재 고유정은 ‘우발적 살인’을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고유정이 범행 전 흉기와 청소도구까지 미리 준비하는 등 계획범죄 정황을 확인하고,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범행 현장 비산 혈흔으로 볼 때 고유정이 흉기를 여러차례 휘두른 정황도 포착했다. 경찰은 피해자 혈흔에 대한 약독물 검사를 다시 진행해, 범행 수법 등을 규명하고 오는 12일쯤 별도 현장 검증 없이 사건을 검찰로 넘길 방침이다.

[권오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