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정보’ 올리면 ‘승진’ 내려와…청와대-정보경찰 ‘그들만의 공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보경찰은 어떻게 ‘리바이어던’이 되었나

박근혜 정권, 입맛 맞는 정보 ‘하명’에

국회·행정부처·언론사·경로당…

‘수족’ 구실 IO가 밑바닥 정보 훑어

정보별 VIP에 직보·수석실에 전달

고위직 실적 따라 요직 승진 거듭

‘휴업’ 40여일만에 열린 사개특위

‘경찰, 정보기능 떼어내자’ 안건에

민갑룡 청장 ‘경찰 손발 자르나’ 반발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보활동을 통해서 무엇이 위험을 야기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는지 알아야만 단속과 수사를 할 수 있다. 그걸 못하게 하면 경찰의 손발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다. 경찰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말씀드린다.”

지난 4월29일 수사권 조정 등 사법개혁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올린 것을 끝으로 40일 넘게 ‘휴업’ 상태였던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10일 열렸다. 회의에 나온 민갑룡 경찰청장은 경찰에서 정보 기능을 떼어내 ‘국가정보청’을 설치하자는 자유한국당 법안은 ‘경찰의 손발을 자르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보경찰 개혁 방안이 미흡하다”는 여당 의원들 지적에도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정치적 사찰이나 동향 파악으로 변질 우려가 있는 ‘인사검증’ ‘정책정보’ 수집에 대해 민 청장은 “국가기관 중에 마땅히 할 수 있는 곳이 없어 경찰이 법에 따라 하는 정상적인 기능”이라며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과거 정보경찰의 불법 행위를 자체 수사한 경찰은 지난달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정보경찰 핵심 인사들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검찰은 다시 수사하라며 사건을 경찰로 돌려보냈다. 이후 검찰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국의 정보경찰 조직을 동원해 불법 사찰과 선거 개입 등 혐의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구속기소했다. 또 ‘법의 테두리’ 안이라던 불법 정보활동의 내밀한 작동 방식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청와대는 정권 입맛에 맞는 정보 생산을 요구하고, 정보경찰은 치열한 내부 경쟁에서 승진을 맞바꾸는 구조가 오랜 기간 고착된 사실이 드러났다.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공무원의 노골적인 정치개입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권의 수족 구실을 하는 ‘정보 리바이어던’이 왜 그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검찰 수사와 기소 내용 등을 토대로 살펴봤다.

한겨레

■ ‘VIP’의 눈을 붙잡는 ‘A보고’
정보경찰의 힘은 ‘브이아이피’(VIP·대통령)의 눈을 붙잡을 수 있는 ‘직통보고’에서 나왔다. 경찰청 정보국에서 생산돼 청와대에 전달되는 보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A보고’가 있다. ‘문발’로 청와대 부속실을 통해 대통령에게 직보되는 핵심 보고서다. ‘문발’은 ‘문서를 발 달린 사람 편에 보낸다’는 경찰 은어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A보고는 일주일에 한차례 정도 이뤄지는데, 주로 ‘민심 동향’ 제목이 달린다. 특히 선거철에 ‘호남 분위기’ ‘경북 분위기’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보고됐다고 한다.

청와대 지시로 만들어지는 ‘대통령 별보’도 있다. 대통령이 읽는 A보고는 몇 쪽에 그치지만, 청와대 치안비서관실을 거쳐 정무수석실에 보고되는 별보는 양이 많고 훨씬 구체적이다. 2016년 총선 당시 ‘대구 정가 보고서’ 등이 별보로 작성됐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청와대 각 수석실로 전달되는 ‘정책정보’가 있다. ‘정책정보’는 전국 각지의 정보경찰과 국회·행정부처·언론사 등을 출입하는 정보분실 소속 정보관(IO)이 수집한 밑바닥 정보가 압축돼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정보경찰은 정책정보 명목으로 반대파 정치인 등을 사찰·견제하기 위해 지역 서점, 경로당까지 훑은 뒤 견제 방안 등을 제안했다.

■ ‘고속 승진’ 고위직 정보경찰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며 정권과 ‘한몸’이 되었던 고위직 정보경찰은 ‘요직 승진’으로 보상받았다. 이번에 구속기소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승진 경로가 대표적이다. 2007년 정치 관련 정보를 수집·생산하는 핵심 보직인 경찰청 정보2과장을 지낸 강 전 청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행정관, 경찰청 정보국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초대 사회안전비서관을 맡았다. 이어 서울경찰청장을 거쳐 경찰청장 자리에 올랐다. 검찰 기소 내용에는 2012년 경찰청 정보국장, 2016년 경찰청장 시절 선거 개입 정보활동 지시 등이 포함됐다.

2016년 총선 당시 경찰청 정보국장(정창배),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선임행정관(박기호)도 박근혜 정부 시절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총경→경무관→치안감으로 고속 승진했다. 이들이 ‘영전’을 거듭하던 시기는 정보경찰이 총선과 지방선거 등에서 노골적인 선거개입 문건 등을 작성했던 시기와 고스란히 겹친다.

■ ‘실적 압박’ 하위직 정보경찰
정보경찰의 대부분을 이루며 ‘수족’ 구실을 하는 것은 하위직 정보관이다. 전국에 3천명가량 있다. 정부 기조에 맞는 정보를 생산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인사평가 시스템 속에서 불법적인 정보수집 활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통령 또는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나온 ‘강조사항 말씀’이 정무수석을 통해 치안비서관실에 전달되면, 이는 다시 경찰청 정보국을 통해 전국의 정보경찰에 전파된다. ‘대통령 국정철학’이 정보수집 가이드라인이 되는 셈이다. 경찰은 “평소 (대통령의) 말씀, 강조사항, 행동 등을 유심히 살펴 국정기조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국민의 불편·불만을 전달할 수 있다”(정보경찰 대상 자체 교육자료)고 강조해왔다.

‘기조’에 맞는 정보는 ‘채택’되지만 그렇지 않은 정보는 ‘킬’(폐기)됐다. ‘정책정보’로 채택된 보고서가 많은 정보관은 ‘가점 평가’를 받는다. 실적은 순위가 매겨져 ‘공지’됐다. 경쟁을 부추긴 것이다. 검찰은 “일부 정보경찰은 스스로를 ‘점수의 노예’라며 한탄했다”고 전했다.

임재우 서영지 기자 abbado@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한겨레 LIVE 시작합니다 ]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