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전방위 제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중국 역시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미국과 중국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로서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특히 미·중 양쪽과 긴밀한 공급 체계로 얽혀있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그리고 국내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셈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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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13일부터 글로벌 전략회의, 화웨이 대책 논의
삼성전자는 13일부터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T·모바일(IM)부문을 시작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DS)등 각 부문별로 순차적으로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회의는 1년에 두차례 6월과 12월 열리는데, 이번 회의에선 미중 무역분쟁과 화웨이 사태 등에 관한 전략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미 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나 뉴욕타임스 등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에 단기적으로 좋은 기회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부담이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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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제재에 따른 득실 자료=하이투자증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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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5G 제동 걸리면…삼성엔 기회인 동시에 악재
화웨이는 5G(세대) 이동통신 장비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직접적인 경쟁자다. 화웨이를 두고 세계가 양분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통신사업자 단체인 GSMA는 10일 화웨이의 5G 장비 배제가 5G 도입 자체를 늦출 수 있다고 전망했다. GSMA는 특히 "유럽의 경우 화웨이의 5G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5G 구축 비용이 약 550억 유로(약 73조9000억원)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웨이가 5G 장비의 기술력에서 경쟁자들보다 앞서있고 상대적으로 가격은 저렴하기 때문이란 이유다. GSMA는 "5G 구축 비용이 증가하면 5G 도입이 늦어지고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도 크게 손실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로서 이는 호재이면서 악재다. 우선 화웨이 제재에 유럽이 가담할 경우 삼성전자에겐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5G 장비 시장 점유율 20%까지 높인다는 목표다. 현재 삼성전자의 LTE 장비시장 점유율은 11% 정도로, 화웨이나 에릭슨, 노키아 등에도 뒤딘다. 하지만 통신 사업자들이 비용 증가로 5G 도입 자체를 늦출 경우 5G 장비는 물론 5G용 스마트폰 시장 선점을 노리는 삼성전자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5G 폰을 출시한 업체는 오포와 샤오미 등 중국 업체 외엔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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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스마트폰 판매 3000만~4000만대 늘 듯
화웨이는 지난해 약 2억5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했다. 이중 중국 내 판매 비중이 51%, 해외 판매 비중이 49% 정도다. 특히 유럽과 중남미, 중동·아프리카에서 약진 중이다. 화웨이가 약진할수록 삼성전자의 입지는 좁아진다. 고의영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이 어려워져 삼성전자가 연간 3000만~4000만대를 더 팔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웨이는 앞으로 G메일·구글맵 같은 구글 앱을 탑재할 수 없게 된다. 고 애널리스트는 "중국 내에선 몰라도 구글 앱 없는 스마트폰이 해외에서 소비자 선택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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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중국 내 불매운동 역풍에 판매 감소할 수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지난해 400달러 이상 스마트폰의 출하량은 약 3억대 정도다. 이중 애플이 1억9000만대 정도를 차지했다. 나머지 1억1000만대를 놓고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S9과 노트 9, 화웨이의 P20프로와 메이트 20프로 등이 경쟁했다. 고 애널리스트는 "화웨이의 프리미엄폰에 대한 수요를 삼성전자가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애플은 오히려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의 반작용으로 중국 내 불매운동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삼성전자는 1% 정도로 미미하지만, 애플은 21%(약 4000만대)나 돼 중국 내 불매 운동은 애플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 모건 스탠리는 최근 이같은 이유로 "애플의 올해 판매량 전망치를 2억1300만대에서 2억대 이하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체 매출의 20%가 중국을 포함한 범중화권에서 나오는 애플은 최근 한 달 새 주가가 20% 가까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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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제재 장기화되면 글로벌 공급체계 무너져
하지만 화웨이 제재가 장기화되면 애플뿐 아니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피해로 연결될 것이란 분석이다. 일단 글로벌IT수요 감소로 인한 D랩 값 하락 등이 부담스럽다. 특히 국내 기업은 4대 그룹 계열사만 따져도 중국에 30~40개의 생산법인이 있다. 이중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7조 9000억원을 투자해 시안의 낸드플래시 공장을 증설중이다. SK하이닉스는 95000억원을 들여 D램을 생산하는 우시 공장을 지난해 확장했다. 두 회사의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매출만 각각 5조원씩 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현지에 생산 법인을 둔 기업은 중국 당국에 무조건 끌려갈 수 밖에 없다"며 "사드 사태 당시 경험했듯이 중국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여러 각도에서 기업을 옥죌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드 사태가 불거진 2017년 3월부터 1년 동안 롯데그룹의 2조원을 포함해 국내 기업은 8조5000억원의 직간접적 피해를 입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은 "미 제재로 화웨이의 약진이 주춤한 틈을 타 국내 기업이 반사이익을 본다는 건 짧은 생각"이라며 "지금은 글로벌 기업간 공급체인망이 워낙 복잡해 제재가 장기화할 수록 모두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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