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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심장수술 98세 “이래저래 죽긴 마찬가진데, 수술하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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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이상 초고령 수술 급증

위암수술 10년 새 3.7배로

재작년 척추수술 100세인 34명

“기술 좋아져 나이는 숫자일 뿐”

중앙일보

서울 서대문구 '독일 병정' 이우천씨가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다. 3년 전 95세 때 네 시간에 걸쳐 심장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막걸리를 즐길 정도로 정상을 유지한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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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이우천 할아버지는 주민등록 나이로 106세다. 실제로는 98세다. 10일 오후 북아현동 꼭대기에 있는 아파트를 찾았다. 3남 2녀 자녀와 손자 10명이 함께 찍은 대형 가족사진을 보며 일일이 소개했다. 기자가 “기억력이 너무 좋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독일 병정이 치매 걸리겠느냐”고 말한다. 그는 한국전쟁 특수부대 참모장으로 참전했다. 엄격한 군 생활을 하면서 ‘독일 병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파트 3층을 혼자 오르내렸다. 할머니(87)에게 “부축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혼자서도 잘 다닌다”고 한다. 계단을 오를 때 숨이 가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약 3년 전 서울성모병원에서 큰 심장수술을 받았다. 심장판막과 일부 동맥을 갈아끼웠고, 심방세동 부정맥 수술을 했다. 4시간 동안 세 가지 수술을 했다. 이씨는 2013년부터 심장이 좋지 않아 약물치료를 했으나 한계에 다다랐다. 통증이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숨이 차서 119에 실려 갔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게 매한가지니 한 번 수술해보자고 했어. 담당의사가 자신 있다고 수술을 권했어.”

할아버지는 가슴의 30㎝ 수술 자국을 보여주며 “수술이 매우 성공적이었어. 가슴이 전혀 안 아파. 수술하길 잘했어”라고 말한다. 지난달 31일 진료에서 아무런 문제 없었다고 했다. 매일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돈다. 척추가 좋지 않아 등이 약간 굽은 걸 제외하면 건강에 큰 문제없다. 일주일에 두 세 번 막걸리 반병을 마신다. 어릴 때 함경북도에서 한학을 배워서 서예에 조예가 깊다. 구양순(중국 당나라 초기 서예가) 서체를 쓴다. 서울 운현궁에서 개인전을 연 적이 있다.

장남 이향만 가톨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과)는 “아버지가 처음에는 수술하자고 하니까 ‘살 만큼 살았는데 무슨 수술이냐’고 했다. 그런데 고통이 심하니까 수술에 동의했다”며 “다른 어르신들도 용기를 갖고 수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 청송군 배재창(93)씨도 지난 3월 서울아산병원에서 방광암 수술을 받았다. 2014년 8월 첫 수술 이후 다섯번째다. 석 달마다 검사해서 암세포가 보이면 수술한다.

배씨는 요즘도 농사일한다. 4월에 고구마 모종을, 지난달에는 깨 모종을 심었다. 아들 영진씨는 “아버지가 몸이 수술을 받쳐줄 상태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암과 더불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수술하자고 적극적이었고,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80세 이상 초고령 노인이 큰 수술을 하는 일이 크게 늘었다. 예전 같으면 ‘이 나이에 뭘’이라고 넘어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전문가들은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김광준 교수(노인의학)는 초고령 수술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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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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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수술하지 않으면 한 달 내 사망할 가능성이 큰 질환이다. 고관절 골절이 대표적이다. 2012년 9229명에서 2017년 2만7510명으로 늘었다. 둘째, 암·심장질환 등 내버려 두면 악화하고 수술하면 호전되는 병이다. 위암 수술은 2007년 4185명에서 2017년 1만5559명으로 늘었다. 셋째,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병이다. 척추질환이 대표적이다. 척추수술은 2007년 10만여 명에서 2017년 약 16만 명으로 늘었다.

밖으로 드러내기 힘든 병도 수술한다.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83세 여성이 자궁·방광이 몸밖으로 빠져나오는 자궁·방광 탈출증 수술을 받았다. 자궁 주변 인대가 약해져서 생긴 병이다. 자주 쪼그려 앉거나 무거운 물건을 많이 들면 생긴다. 이 여성은 남편 간병하다 병을 얻었다. 심하면 소변을 잘 못 본다. 로봇수술을 했다. 4시간 더 걸리는 큰 수술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신정호 교수(산부인과)는 “예전에는 ‘이렇게 살다 죽어야지’라고 여겼으나 생활이 너무 불편해서 적극적으로 수술한다”고 말했다.

100세인 수술도 흔하다. 2017년 여성 1명이 대장암 수술을, 34명이 척추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102세 남성이 고관절 고정수술을 받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면서 골절됐다. 지난해 초 삼성서울병원에서 102세 남성이 복부 대동맥류(심장과 허리 아래쪽을 연결하는 굵은 동맥이 부푼 질환) 수술을 받았다.

위암 전문가인 노성훈 강남세브란스 특임교수는 “틀니와 임플란트 시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80세 넘은 어르신들의 영양 상태와 체력이 좋아졌다. 수술·마취 기술이 발전하면서 절개 부위가 작아지고, 수술 시간이 단축돼 지금은 위암 수술 합병증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종전에 고혈압·당뇨병 등이 있으면 수술할 엄두를 못 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덧붙였다.

김광준 교수는 “의사와 간호사 등의 전문인력이 노인의 인지기능, 심리상태, 일상생활 능력, 노쇠 정도, 근력 등을 포괄적으로 평가해 신체 나이에 문제없으면 80, 90세라도 수술할 수 있다”며 “이런 평가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일부 병원만 시행한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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