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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흐지부지’ 집단소송 … 착수금 날려도 변호인은 웃는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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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변호사들 ‘돈벌이 수단’ 악용 … 먹튀 논란 / “피해자 많으면 받는 돈 커진다”… 온라인 카페 등서 참여 부추겨 / 승소 어려운데도 ‘소송 무리수’ / 재판 과정 불성실 변론도 많아 / 변호사는 패소해도 ‘남는 장사’ / 당사자는 착수금 못 돌려받고, 상대방 재판 비용까지 떠안아 / 변호사단체 “진정 접수 땐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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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에 참여하시면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잇따른 화재가 발생한 BMW 차주 박모(45)씨는 그해 7월 자신이 가입한 BMW 온라인 카페를 통해 이러한 내용이 담긴 쪽지를 받았다. 2015년 3월 차량을 구입한 박씨는 소송에 참여하기로 하고, 쪽지가 안내한 집단소송 카페에 가입했다. 카페에는 2600여명의 사람이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힌 상황이었다. 변호사는 착수금 등으로 70만원가량을 요구했다. 그러나 소송준비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변호사는 박씨 등에게 진행 상황 등을 알려주지 않았고, 이에 박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카페에서 강제로 퇴장시켰다.

변호사업계에서 집단소송이 새로운 먹을거리로 떠올랐다. 그러나 변호사들이 착수금 수익을 위해 패소 확률이 높음에도 무리하게 집단소송을 추진해 억울한 피해자들도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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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집단소송은 증가 추세다. 대법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원고 혹은 피고가 10인 이상인 집단소송(1심 다수당사자 민사 소송 기준)은 8244건이다. 2014년 6812건과 비교해 4년 만에 1432건 늘었다. 이날 대형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집단소송’을 검색한 결과 통신사·카드사 개인정보 유출과 릴리안 생리대 파문, BMW 차량 화재 등 총 281개의 집단소송 카페가 개설·운영되고 있었다.

집단분쟁 전문 플랫폼 ‘화난사람들’에 따르면 발암물질인 라돈이 검출된 ‘까사미아’ 매트와 관련해 착수금 11만원을 조건으로 216명이 모였고, 토요타 RAV4 허위광고와 관련해서는 착수금 10만원을 내고 79명이 참여해 집단소송이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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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1억400만여건의 고객 정보유출 사태를 부른 카드3사 사장들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당시 손병익 NH농협카드 분사장,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연합뉴스


집단소송은 피해자의 권리구제란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일부 변호사들이 착수금 등을 위해 패소 확률이 높음에도 무리하게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수십에서 수백명의 피해자를 모아 집단소송을 기획하고, 1인당 착수금으로 10만∼100만원을 받는다. 만약 피해자 100명이 10만원씩만 착수금을 지급해도 변호사는 승패와 상관없이 1000만원을 받는다. 집단소송이 변호사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미세먼지와 관련해 집단소송을 추진한 변호사 A씨는 “피해자를 모을수록 받는 돈이 커진다”며 “맘카페 등에서 분위기를 파악하고, 돈이 될 만한 것을 찾는다”고 귀띔했다.

통상 집단소송은 피해자 측이 승소하기가 어렵다. 기업을 상대로 이뤄지는데 이들은 대형로펌 등을 선임해 맞대응하기 때문이다. 다수 피해자별로 상황이 달라 1명의 변호사가 집단소송을 통해 모든 피해에 대한 기업의 과실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 지난해 누진세 반환 집단소송의 경우 5000여명이 참여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재판이 진행됐지만 피해자 측이 패소했다. 재판이 불성실하게 진행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회장의 배임·횡령 등으로 상장 폐지된 한 코스닥 상장사를 상대로 제기된 집단소송에 참여했던 정모(31)씨는 “소송에 참여하기 위해 인감증명서 등을 보냈는데 진행 결과에 대해 듣지 못했고, 나중에 패소했다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집단소송을 담당했던 한 재경지법의 판사는 “100명이 참여한다고 하면 100명에 대한 모든 증거자료가 제출돼야 하는데 변호사가 일부만 제출하고 갈음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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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대법원 규칙에 따르면, 패소 시 소송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해야 한다. 변호사들이 무리한 집단소송을 추진하면서 이 점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지가 라돈이 검출된 침대 구매자들이 모여 진행 중인 집단소송 위임계약서를 확인한 결과 계약서에는 착수금 10만원 등 내용은 명시됐지만 패소 시 패소자가 상대방 재판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은 적시되지 않았다. 변호사단체에서는 일률적으로 기획성 집단소송을 막기는 힘들다는 반응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착수금을 냈는데 불성실하게 재판에 임하는 등 개별 진정이 접수될 경우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염유섭·유지혜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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