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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렌즈로 담아낸 안전·교육 실상 ‘급속 성장’ 중국 사회 이면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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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진작가 왕칭쑹, 한미사진미술관서 개인전

20년간 작업한 40여점 전시

누드 작품 많아 ‘미성년 불허’

경향신문

왕칭쑹이 2009년 프랑스에서 찍은 ‘Safe Milk’(안전한 우유). 2008년 중국에서 발생한 ‘멜라민 분유 사건’을 풍자해 중국 내에서는 전시할 수 없다.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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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를 입지 않은 여성 10명이 긴 탁자에 나란히 앉았다. 탁자 위에는 엎지른 듯한 우유가 고여 있다. 탁자 옆에는 역시나 상의를 입지 않은 만삭의 임신부가 화면 밖을 주시 중이다. 가만히 보니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은 남성이다. 머리숱은 듬성듬성하고 가슴에는 하얀 반창고 한 쌍을 붙였다.’ 중국의 사진작가 왕칭쑹(53)이 2009년 발표한 작품 ‘Safe Milk’(안전한 우유)는 2008년 중국에서 발생한 ‘멜라민 분유 사건’을 풍자했다. 여성들 사이에 앉은 남성은 왕칭쑹 자신이다. 가슴에 붙인 반창고는 중국의 분유는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다.

중국 당국이 허락하지 않아 중국 내에서는 이 작품을 볼 수 없다. 그러나 해외전시는 예외다. 서울 송파구 한미사진미술관은 지난 1일 개막한 왕칭쑹의 개인전 ‘The Glorious Life’(글로리어스 라이프)에서 이 작품으로 전시관 라운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왕칭쑹은 중국의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가다. “나는 예술가보다는 지속적으로 사회의 현장을 담는 기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그림을 그리다 1996년부터 사진으로 ‘전향’한 것 역시 “변화를 포착하는 데는 사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서다.

이번 전시에는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작업한 40여점이 나왔다. 전시 제목 ‘The Glorious Life’는 번역하면 ‘생활예찬’쯤 된다. 그러나 왕칭쑹의 사진은 ‘예찬’이란 말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사회를 비꼬는 강력한 ‘역설’이다. 본인은 기자를 지향한다 말하지만 사진을 보면 왕칭쑹은 탁월한 연출가 같다. 일단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지 않는다. 왕칭쑹은 길게는 5년 이상 준비한 뒤 사진을 찍는다. 1997년 이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지만, 사진을 찍기 위한 스케치는 예외다. 세밀한 스케치를 그리고, 그에 맞춰 소품과 모델 등을 준비한 뒤 ‘연출 사진’을 찍는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합성’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길게는 수십m에 이르는 왕칭쑹의 작업은 모두 ‘실사’다.

그의 대표작인 ‘Follow’ 시리즈 3점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2003년 발표한 ‘Follow Me’는 글자로 가득 찬 거대한 칠판 앞에 선 교수(왕칭쑹)의 모습을 담았다. 지난달 31일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왕칭쑹은 “칠판을 채우는 데 5년 정도가 걸렸다”고 밝혔다. 칠판에 적힌 글씨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3년에 내놓은 ‘Follow Him’은 거대한 서고에서 책에 둘러싸여 있는 학자의 모습을 그렸다. 왕칭쑹은 “20t 정도 되는 헌책을 사서 이 장면을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2013년작 ‘Follow You’는 도서관이 배경이다. 모든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가운데 작가 혼자 ‘각성제 주사’를 맞아가며 깨어 있다. 벽면에는 역대 중국 정권이 내세웠던 교육구호가 쓰여 있다. 원래는 구호 끝에 느낌표가 붙어 있었지만, 작가는 이를 다 물음표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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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칭쑹이 지난달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작품 ‘Dormitory’(기숙사)를 설명하고 있다. 홍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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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칭쑹의 시선은 중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해 2월에는 미국 디트로이트 하이랜드파크의 ‘폐공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때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었던 디트로이트의 현재 모습은 중국의 미래일 수도 있다. 폐공장 앞에는 ‘중국은 세계로! 세계가 중국을 배우게 하라!’라 쓰인 플래카드를 걸었다. 사진 속 왕칭쑹은 ‘메이드 인 차이나’ 브랜드 수백개의 라벨을 모아 만든 옷을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화면 밖을 응시한다. 왕칭쑹은 이번 작품에서도 “(플래카드 속) 느낌표를 물음표로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다. 청소년은 보호자 동반하에만 볼 수 있다. 작품 상당수에 옷을 완전히 벗은 인물이 등장한다. 2005년 발표한 ‘Dormitory’(기숙사)에서는 100명 넘는 사람이 옷을 벗었고, 2014년에 나온 5분짜리 영상작품 ‘Happy Bed’(행복한 침대)는 정확히 35개 방에서 사람들이 동시에 정사를 나누고 있다. 왕칭쑹에게 ‘노동자의 모습까지 누드로 찍을 이유가 있냐’고 물으니 “그것이 당시 중국인들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란 답이 돌아왔다. 이어 “중국인의 삶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왕칭쑹은 저명한 작가가 됐지만 완전한 ‘표현의 자유’는 아직 갖지 못했다. 전시와 출판을 하려면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는 “‘나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왕칭쑹은 계속 사진을 찍을 참이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왕칭쑹은 이런 글을 썼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나 목적 없이 사진을 찍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이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서는 셔터를 누르는 기회를 소중히 간직해야 합니다.” 전시는 8월31일까지 이어진다. 입장료는 성인 6000원, 청소년(보호자 동반)은 5000원이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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