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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전문]갈루치 “트럼프, 아무것도 안하며 北 비핵화 바란다”[경향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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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문제 등은 실무자들이 맞춰가야지, 두 정상이 만나서 해결할 게 아니다. 하노이 회담에서 협상 실무자들간 합의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따르지도 않았다. 또한 단계별·행동별 상응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모든 걸 하길 바란다.”

1994년 첫번째 북핵 위기를 봉합한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73)는 지난달 워싱턴D.C.의 조지타운대 연구실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처럼 말했다.

지난달 북한의 미사일 시험 재개에 대해 갈루치 석좌교수는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다는 메시지”라며 “북한은 올해 안에 무슨 행동을 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갈루치 교수는 일괄 타결 및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신 장기 전략을 놓고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종단계(end game)’부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갈루치 석좌교수와의 일문일답.

경향신문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자신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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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은 어떻게 보나.

“북한은 하노이에서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북한은 핵 관련 시설 파괴로 미국이 일정 부분 제재 해제를 할 것이라 기대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진전이 없다보니 북한이 ‘더 이상의 기다림은 힘들다’라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은 정치적인 행동이었다고 본다.”

- 하노이에서 만난 것은 북·중·미 관계가 작용한 거 같다.

“북한은 베이징뿐만 아니고 여러나라로 확장의 기회로 생각했을 거다. 중국의 입장으로는 북한이 동북아에서 더 이상 문제가 생겨서 미군의 추가 파병을 원치 않는다. 그런 구조적으로 중국과 북한의 긴장감이 있다. 하노이를 선택함으로써 북한은 베이징에 너무 의존한다는 의견을 종식시켰다. 북부 베트남은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을 치른 장소다. 그런 곳에서 북한과 평화회담을 한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이미지로 갈 수 있다. 우리와 베트남 관계가 진화한 것처럼 북한과도 그럴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 제네바 합의는 북핵 관련 하나의 교본이 된 것 같다.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당시와 25년이 지난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협상 기간이다. 1994년 10월 합의는 정말 오랜 시간 진행한 협상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1993년 봄 뉴욕에서부터 시작해 제네바에 갔다가 1994년 7월 큰일(김일성 주석 사망)이 생기는 등 아주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대화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빨리 진행하려는 게 문제다. 그 결과 지금 제대로 된 일이 없지 않은가.”

- 하노이 회담 결렬 이유는?

“정상회담은 외교적 절차에 있어 실무자들간 진행 과정의 결과물에 해당한다. 그런데 하노이는 ‘최종단계’부터 먼저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두 정상에게는 많은 부담이 됐을 테고, 짧은 시간에 합의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하노이 회담에서는 몇개월의 협상 실무자들간 합의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이 따르지 않았다고 안다.

덧붙이자면, (트럼프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둘 다 정치에는 전문가일지라도, 이 분야에 전문가들이 아니다. 핵 에너지·무기·발전소 등의 문제는 실무자들이 맞춰가야 하는 문제지, 두 정상이 만나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핵을 풀기 위해서는 상호 관계가 필요하다. 예컨대 (풍계리 핵시설 폭파를 넘어) 영변 핵발전소를 포기한다면 제재 완화나 종전선언, 관계 정상화 등 서로간에 협의가 단계별·행동별로 상응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작년 싱가포르 회담 때를 보면,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모든 걸 하길 바랐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하기전에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다’고 했다. ‘스텝 바이 스텝’이 아닌 ‘투 스텝(한 번에 두 계단 이상 오르기)’으로 진행하려 한다. 그건 전략적인 방법이 아니다.”

경향신문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자신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 안호기 에디터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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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CVID가 ‘정치적인 넌센스’라고 했는데.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은 북한이 모든 핵 시설·무기 등을 폐기했을 때 그 조각을 다시 조립해서 만들 수 없음을 의미한다. 넌센스라고 한 건 혹 북한이 핵 관련 시설을 폐기하더라도 다른 어떤 방법으로라도 재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설은 없더라도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은 여전히 다 있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이란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또 만일 북한이 ‘우리 핵무기는 30개인데 이걸 다 폐기했다’라고 한다면 그게 정말 다인지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40개가 있으면서 30개라고 확약서를 만들면 그만 아닌가.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의 양도 실제 양보다 적게 폐기해놓고 다 했다고 하고, 북한 어디엔가 나머지를 숨긴다면 찾을 방법이 없다. 아주 소량의 플루토늄으로도 충분히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현실적이어야 한다. 분명 검증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포괄적·종합적 폐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갈루치는 ‘C’를 완전한(complete)이 아닌 포괄적(comprehensive)이란 표현으로 썼다. 북한의 반발에 미국은 이후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를 요구한다)

- 핵은 인정하고, 미사일 해체만으로 범위를 좁힐 수도 있나.

“북한 핵은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한국·일본 같은 동북아시아 동맹 국가들에게 위협이다. 미사일을 없앤다 해도 비행기로 핵탄두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미사일만 해체하는 것은 미국에게 큰 의미가 없다.”

-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을 평가한다면.

“많은 미국인들은 젊은 새로운 리더가 나왔을 때 이것이 새로운 경제 성장과 정치적 개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낙관했다. 변화가 있을 것으로 봤다. 북한 내부적으론 어떨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젊은 리더가 일부 시민이나 가족들에게 (숙청 등)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다고 본다. 미국 입장에서는 법규를 어기고, 인권을 침해하는 등 북한 내 상황이 참혹하다고 본다. 북핵 협상의 성공조건 중 하나는 북·미 관계 정상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만,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조정이 내부적으로 있지 않는 한 힘들 것이다.”

경향신문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미국 워싱턴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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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대통령 같은 최고 결정권자라면 어떻게 하겠나.

“북·미간 합의를 이룰 기회는 있다고 본다.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통일을 위한 무력을 쓴다는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는 상황을 만들면 가능하다. 그것은 오직 두 국가 리더의 의지뿐 아니라 시민들도 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긴 시간 신뢰를 쌓는 등 지속적인 정치적 과정이 필요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스텝 바이 스텝’이 필요한 이유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양쪽 모두 매우 큰 의지가 필요하다.”

- 버락 오바마 정부가 북한의 힘을 키웠다는 시각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접근 방식이 북한의 힘을 더 키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략적 인내’로 불리는데 나는 다소 유감스러운 용어라고 본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는 ‘유지’였다. 한국·일본과 튼튼한 동맹 유지, 북한에 대한 제재 유지, 한·미 군사훈련 유지 등. 그러던 중 북한은 군사력을 향상시켰고, 미사일 개발과 핵실험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힘이 커졌다.

오바마 정부 정책이 북한의 문제를 해결했느냐고? 물론 아니다. 오바마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그 문제는 지금도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미국이 조금 더 노력했어야 했다고 본다. 오바마 정부 때 여러 조치를 하고, 대북 접촉도 했어야 하는데 당시 북한은 내부적으로 바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사망과 새로운 리더(김정은)의 등장 등으로 내부적으로 힘을 구축해야 하는 시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쯤에야 정비를 마치고, 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도 마무리했다.”

-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대북 정책과 관련해 ‘차라리 미치광이 트럼프가 낫다’고 했는데.

“우리 모두는 결과물을 내는 것을 선호한다. 만일 트럼프의 협상, 외교 능력으로 북한과 협상에 성공하고, 한국·미국·일본 등 다른 나라들을 향해 가하고 있는 북한의 위협이 급격히 줄어든다면 트럼프가 모든 공을 가져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계속 해왔던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 정부의 접근 방식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과 두 번 정상회담을 열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지와 핵실험 중지,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 작은 몇 가지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2017년에 비해 지난해, 올해 큰 변화가 없다. 북한은 올해 안으로 무언가 다른 행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 행보가 무엇일지 걱정할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미국 워싱턴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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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제네바 합의를 넘어설까.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우선 민주당이 집권한다 해도 지금 상당한 수의 후보가 경합 중이다. 누가 당선될지도 모르고 그 당선자가 한국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다만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동북아 이슈는 중요하다. 어쨌든 민주당은 무력이 아닌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할 것이다.”

- 제네바 모델이 유효한가, 새로운 모델 필요한가.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1994년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협상으로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을 10년간 중단했었다. 그러나 후속 정책이 북한의 핵을 없애지 못했다. ‘정책’이 실패한 것이다. 우리가 다시 25년 전과 같은 구조로 돌아갈 것인가, 같은 종류의 틀로 갈까? 모르겠다. 그때 북한이 필요로 했던 시설들(경수형 원자로 등)을 지금도 필요로 할까 싶다. 합의에 중요한 부분은 양국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서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북·러 정상회담 이후 6자회담도 거론되고 있는데.

“나는 6자회담이든, 양자회담이든, 3자회담이든 무엇이든 타결만 된다면 상관없다고 본다. 다만 내가 협상할 때는 북·미 양자간 협상이었다. 관리가 가능했던 것도 두 나라만 만나는 협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6자회담을 의도한 적은 없지만, 많은 나라를 만났다. 우선 북한과 이야기한 뒤 한·일, 이따금 중국·러시아의 자문을 구했다. 특히 한국·일본과는 북한 대표와 협상 직후 바로 만났다. 중요한 일은 양자회담일 때 결정된다는 것을 다양한 협상 상대들을 만나며 알게 됐다. 회의실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은 적게 진행된다. 결국 마지막엔 워싱턴과 평양이 서로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서울과 도쿄 등 동맹국들과 협의가 필요하다. 물론 베이징과도 협의해야 할 것이다.”

- 2017년 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다. 그런 상황이 또 올 수도 있을까.

“2018년 꽤많은 사람들이 군사적 대립을 우려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 메시지는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미국은 경계선을 그었고, 만일 북한이 넘어선다면 군사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나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때 북한이 제한적인 행동이라도 했다면 2차 한국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런 식으로 무력 대립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피해야 한다. 지난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담 결과, 대화가 싸움보다는 낫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계속 대화한다면 군사적 행동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북·미 국교 수립이 되면 주한미군은 어떻게 될까.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대서양과 태평양을 중심으로 동맹국 구축에 노력해왔다. 동맹국들의 이익은 물론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동맹의 목적은 안보다. 이 목적이 유효하다면 미국은 동맹을 지속할 것이다. 북한과 어떻게 협상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동맹국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바꾸지 않는 이상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 만약 주한미군 철수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면 동맹국들과 논의해야 한다.”

경향신문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미국 워싱턴D.C.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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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미국)|김경학·전병역 기자 gomgom@kyunghyang.com
대담|안호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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