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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사설] ‘나홀로 기자회견’ 강행한 법무장관의 왜곡된 언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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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그제 검찰과거사위원회 활동 및 관련 검찰 수사와 관련해 ‘나홀로 기자회견’을 했다.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출입기자단이 회견을 보이콧한 것이다. 박 장관은 법무부 부대변인 등을 상대로 미리 준비한 브리핑 자료를 8분간 읽고 떠났다. 회견장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KTV 카메라 한 대만 서 있었다.

과거사위는 2017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활동하면서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수사를 권고했다. 하지만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별장 성접대사건, 곽상도 전 민정수석의 외압 의혹, 한상대 검찰총장 스폰서 의혹, 장자연 리스트, 용산참사 봐주기 수사 의혹 등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거나 관련자들이 별건으로 구속됐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김학의·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지시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이 때문에 과거사위가 의도를 갖고 무리한 수사 권고를 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과거사위는 위원들이 소송에 휘말리는 등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야당에서는 적폐청산을 앞세운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했다.

이런 복잡한 사안들에 대해 브리핑하겠다고 해놓고 질문을 봉쇄하니 기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법무부는 기자회견 1시간 전에야 ‘장관이 기자단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발표자료에 충분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했다. 정부 발표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사위 출범을 주도한 책임자인 박 장관이 난처한 상황을 피하겠다는 꼼수다. 기자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보다 후퇴한 기자회견’이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이런 상황을 보고받고도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언론을 브리핑 들러리로 세워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니 그랬을 것이다. 박 장관이 굳이 혼자 발표할 것이라면 담화문 형식을 취해도 될 일이었다.

박 장관이 지난 1년 6개월간 우리 사회를 들었다 놓은 사건들에 대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질문 없는 회견’ 형식을 고집한 것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과거사위 활동의 최종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박 장관의 행태는 무책임을 넘어 안하무인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언론의 역할에 대해 무지하거나 구린 데가 많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독선적인 발상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언론을 받아쓰기나 하는 국책 홍보기관쯤으로 여기지 않고서는 이렇게 오만하게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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