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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현장에선] 미래비전에 담긴 문화유산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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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주목을 받지는 않았으나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민속극장 풍류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문화재청 개청 20주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20년을 위한 ‘미래 정책비전 선포식’이었다. 문화재청은 1999년 5월 당시 문화관광부의 ‘문화재관리국’으로 있다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문화재청’으로 격상됐다.

문화재청의 지난 20년이 문화유산 정책의 전부일 리야 없지만 큰 역할을 해 온 건 사실이다. 축하의 의미를 담아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보자면, 한국 문화유산 정책이 이제 성년이 된 것이다. 어른이 된 문화재청이 그려낸 문화유산의 미래가 이날 발표된 정책비전이다. 미래가 강조되기는 했으나 어떠한 미래든 과거, 현재와 떼어놓을 수 없다. 그래서 미래 비전을 통해 읽게 되는 건 지금 우리가 우선 주목하고, 개선해 가야 할 현실이다.

세계일보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


문화재청은 정책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6대 핵심전략을 제시했는데 그중 첫 번째가 ‘포괄적 보호체계’의 도입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정한 지정문화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호, 관리가 소홀한 비지정문화재를 정책 대상에 적극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종류, 수량, 소재지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확실치 않아 정책적인 보존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된 비지정문화재가 적지 않은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유산을 국가 경제 활력의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구상도 담았다.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는 이를 위한 계획 중에 하나다. 당장 떠오르는 건 올 초 목포의 한 변두리 지역을 부동산 투자의 최적지인 양 만들어 버린 투기 의혹이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목포 구도심을 정비해 지역경제 활성화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투기 의혹이 일면서 단단히 홍역을 치렀다. 관련 정책이 보다 다양해지고, 구체적으로 추진될 때 유념해야 할 대목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문화유산이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 빼어난 역량의 증거로만 기능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차라리 없어져 버리길 바라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보존을 위해 재산권 행사가 극도로 제한되는 지역 주민에게 그렇다. 한성백제의 도읍지인 풍납토성 유적이 있는 서울 송파구 주민들이 오랫동안 불편을 호소해 온 게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친화형 현상변경 제도화’, ‘문화유산 영향평가 도입’ 등의 구상이 제시됐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정책비전을 두고 굳이 현재를 되짚어본 건 ‘잘되겠냐’는 의심이나, ‘지금까지 뭐 했냐’고 딴죽을 거는 것이 아니다. 정책비전이 어떤 현실에서 나온 것인지, 그것에 담긴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를 공유해 보자는 생각에서다.

좋은 비전은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실천의 방식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비전 승패는 그것의 현실화에 달려 있다. 현실진단, 문제의식의 공유가 성공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정책비전의 현실화가 문화재청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관련 부처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고백했다. 국민들의 관심은 응원이자 채찍이 될 것이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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