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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열여섯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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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한 린더호프 성

다음 일정인 린더호프 성(Schloss Linderhof)이 있는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를 향해 출발한 것은 11시. 슈방가우에서 오버아머가우까지는 직선거리로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지만 두 마을 사이에는 해발 2340m 높이의 다니엘(Daniel)산이 들어있는 30㎢ 넓이의 암머가우 알프스(Ammergauer Alpen) 산맥이 놓여있다.

탄산염이 많은 백운암으로 이뤄진 이 지역은 지세가 단조로운 특징이 있다. 알프스 산맥의 북쪽 자락으로 내려가면서도 지형이 그리 높지 않고 대도시와 가깝기 때문에 뮌헨 등 도시사람들의 레저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2017년에 227.38km² 면적이 암머가우 알프스 자연공원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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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머가우 알프스를 우회하는 도로는 알펜가도의 일부다. 보덴제(Bodensee) 호반에 있는 린다우(Lindau)와 쾨니히스제(Königssee)에 붙어있는 쇤나우(Schönau)를 연결하는 450㎞가 넘는 알펜가도는 1927년에 지정됐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따라가는 알펜가도는 아침에 구경한 호엔슈방가우 성과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는 슈방가우 인근의 퓌센을 비롯해 지금 찾아가고 있는 린더호프성이 있는 오버아머가우, 전날 묵었던 숙소가 있는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오버아우도르프(Oberaudorf), 그리고 헤렌킴제성(Schloss Herrenchiemsee)이 들어있는 킴제(Chiemsee) 등 알프스 산맥의 북쪽 자락에 있는 마을들을 연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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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사정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구불구불 갈지자 모양으로 감아 돌기를 이어간다. 중간에 길이 막히는 듯 버스가 잠시 속도를 줄이는 사이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이 여유를 보이며 페달을 밟아 버스를 앞지른다. 12시 무렵 오버아머가우에 도착했다. 아머가우 강변에 있는 오버아머가우는 2017년 기준 5458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목각 등 목공예가 유명한 이 마을에는 바바리아 주 목각학교(Bavarian State Woodcarving School)와 1953년에 설립된 NATO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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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아머가우의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볼거리는 뤼프틀말레라이(Lüftlmalerei)라고 하는 벽화예술이다.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 지방이나 오스트리아의 티롤지방에서 볼 수 있는 뤼프틀말레라이의 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18세기 후반에 오버아머가우에 살았던 파사드 예술가 프란츠 세라프 츠빙크(Franz Seraph Zwinck)가 살던 집 줌 뤼프틀(Zum Lüftl)에서 따왔을 수도 있다.

바로크 건축양식이 민속 친화적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에는 프레스코화 기법을 적용해 석회를 개어 바른 위에 그림을 그려 넣으면 석회가 굳어지는 동안 물감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했다면, 오늘날에는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페인트로 그리기도 한다. 그림의 주제는 주택의 수호성인이나 성서적 이야기를 표현하기도 하고, 집의 상징이나 농촌생활이나 사냥 등 농민들의 삶에 관한 내용을 그리기도 한다.

오버아머가우 마을은 매 10년마다 열리는 예수수난극(Passionspiele)으로 유명하다. 세나쿨로(senakulo)라고도 하는 오버아머가우 마을의 부활절 야회극의 역사는 무려 380년이나 된다. 예수수난극은 예수의 재판과 고통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 극으로 사순절 기간에 행해진다.

그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중세 무렵 확장됐던 것 같다. 13세기의 베네딕토수도회가 선보인 예수수난극은 라틴어로 된 산문과 찬송가로 구성돼 오라토리오와 닮았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예수수난극은 처음에는 라틴어로 그 다음에는 해당국가의 모국어로 진행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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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아머가우의 예수수난극은 1634년에 처음 열렸다. 그 무렵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에 돌아온 남자가 가져온 흑사병이 마을에 퍼져 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느님의 가호를 빌어 흑사병을 피하고자 했다. 흑사병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신다면 10년 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예수수난극을 열어 예수의 고난을 새기겠다고 청원을 했던 것이다. 이 같은 맹세를 한 뒤에 거짓말처럼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흑사병에 걸렸던 환자도 모두 쾌차하게 됐다.

오버아머가우 마을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린 맹세에 따라 1634년 처음 예수수난극을 공연한 이후,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던 1940년을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공연에는 2000명이 넘는 배우, 가수, 악기연주가, 기술지원 등에 마을사람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5월 중순에서 10월초까지 매일 오후 2시 반이면 공연을 시작해 중간에 3시간의 휴식시간을 빼고는 5시간에 걸친 공연이 이어진다.

오버아머가우는 인근에 있는 운터아머가우(Unterammergau)와 함께 독일의 유명한 혀꼬임(tongue-twister)문장에도 등장한다. 'Heut' kommt der Hans zu mir, / freut sich die Lies. / Ob er aber über Oberammergau, / oder aber über Unterammergau, / oder aber überhaupt nicht kommt, / ist nicht gewiß!(호이트 콤트 데어 한스 주 미어, / 프로이트 지히 디 리스. / 오버 아버 위버 어버아머가우, / 오더 아버 위버 운터아머가우, / 오더 아버 위버하우프트 니히트 콤트, / 이스트 니히트 게비스!)'라는 내용인데 돌림노래로 부르기도 한다. '한스가 와서 나와 함께 한다면 거짓말을 좋아할 거야. 그가 오버아머하우로 해서 올지, 운터아머가우로 해서 올지, 아니면 오지 않을지, 잘 모르겠네'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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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아머가우에 도착해 린더호프 성(Schloss Linderhof) 가까운 곳에서 버스를 내린 것은 12시. 대구튀김으로 점심을 먹고는 린더호프 성으로 입장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전혀 궁전이 있을 것 같지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숲을 지나면 높은 산이 좌우로 시립하듯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 열린다. 왼쪽에 서 있는 산이 절벽처럼 무너져 내리다가 완만하게 흘러내린 끝에 펼쳐진 평지에 하얀색 궁전을 앉혔다.

린더호프 성이 있는 자리는 원래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언 2세의 사냥터에 속한 행궁(Königshäuschen)이었다. 원래는 1790년에 지어진 작은 농가였던 것을 19세기 중반 막시밀리언 2세가 목조 행궁으로 개조했던 것을 루트비히 2세의 궁성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1870년부터 188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석조 건물로 확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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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린더호프 성은 루트비히 2세가 추진한 3개의 궁성 건설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았으며, 생전에 완공을 본 유일한 건물이다. 외관은 물론 내부까지도 프랑스의 궁전을 본 따서 로코코 양식을 적용했다. 루트비히 2세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를 우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태양왕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서있고, 천정에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과 태양의 불꽃으로 장식한 루이 14세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19세기 후반 유럽사회에서는 이미 기울기 시작한 절대군주제를 신봉했던 루트비히 2세에게 태양왕 루이 14세는 그야말로 우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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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지나면 도자기 방이 이어진다. 2층으로 올라가면 음악을 감상하던 방, 접견실, 대기실, 식당, 독서실 등을 볼 수 있는데 온통 금박을 씌운 조각으로 장식돼있고, 마이센 도자기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루이 14세를 우상으로 모신 것은 그렇다 쳐도 프랑스 왕의 정부들의 초상화까지도 모셔둔 것은 참 특이하다.

독서실의 분위기도 독특하다. 온통 거울로 장식돼있어 방안의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식당에 있는 식탁은 아래층에 있는 주방으로 내려 갈 수 있도록 돼있다. 식사 때가 되면 주방에서 상을 차려 식당으로 올려 보냈다는 것이다. 시종마저도 얼굴을 대하지 않겠다는 루트비히 2세의 철저한 대인기피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식탁은 네 명도 넘게 앉을 수 있도록 컸다. 식사를 하면서 루이 15세, 퐁파두르(Pompadour) 부인, 또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등 프랑스 왕실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있는 듯 대화하기를 즐겼다는 루트비히 2세의 식사습관에 맞추기 위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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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안을 구경하고 나와서는 분수쇼가 진행 중인 정원을 구경했다. 린더호프 궁전(Linderhof Palace)을 둘러싼 정원은 궁전 정원감독 칼 폰 에프너(Carl von Effner)가 설계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꼽는 정원 디자인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간주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에 바로크 양식의 요소를 더한 정원은 영국식 정원에서 보는 것처럼 주변의 풍광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궁전 맞은 편 언덕 위에 모신 비너스 상까지 올라 궁전과 정원의 배치를 내려 봤다. 풍수지리는 몰라도 한눈에 보아 명당자리임이 분명한데 이곳에 살던 루트비히 2세가 단명한 이유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궁전과 정원을 돌아보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됐나보다. 린더호프 성에 입장할 때는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많이 보였는데 구경을 마칠 무렵 빗낱이 든다. 마침 우산을 들고 간 덕을 봤다. 유럽의 날씨는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다. 2시 반경에 뮌헨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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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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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1991 동 대학 조교수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쿠키뉴스 오준엽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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