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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총장 인선 똑같은데 ‘검찰 중립’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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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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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에는 자그마한 국제공항이 있다. 청사 정면에는 지중해의 물빛을 닮은 파란색 이탤릭체로 ‘팔코네와 보르셀리노’라는 이름이 선명하지만, 마음 바쁜 길손들은 대부분 무심코 지나친다. 이 섬의 지명과도 무관하고, 역사적 인물도 아닌 사람의 이름이 둘씩이나 새겨진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조반니 팔코네와 파올로 보르셀리노는 검사였다. 팔레르모 검찰 소속으로 절친했던 둘은 이탈리아 정부가 마피아와 글자 그대로의 ‘전쟁’을 벌인 ‘대재판’(1984~1987)의 시대에 맨 앞을 맡았다. 팔코네는 마피아 조직원 342명을 구속기소해 총 2665년 형을 받아냈다. 보르셀리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마피아와 정치권의 유착을 파고들었다. 이렇듯 직업적 소명에 더없이 충실했던 두 검사는 1992년 5월과 7월 잇따라 마피아가 매설한 폭약에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신념과 용기를 기리는 국민적 비통함이 공항의 이름으로 남았다.

한국 검찰도 조직폭력과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10·13 특별선언’이란 것을 발표하면서 검찰은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에 동원됐다. 그러나 실상은 ‘전쟁’이라고 하기보단 일방적 소탕전에 가까웠다. 윤종빈 감독이 2012년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적절히 보여줬듯 조직폭력배들(하정우, 조진웅)이 검사(곽도원)를 피해 숨고 쫓기고 달아나다 결국은 붙잡히고 마는 식이었다.

이 전쟁 아닌 전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검찰의 대약진이 여기서 시작됐다. 박정희, 전두환의 시대에 검찰은 권력기관 서열 3위에 불과했다. 중앙정보부(혹은 국가안전기획부)와 경찰에 눌려 지내던 검찰이 집권세력의 총아로 등장한 계기가 범죄와의 전쟁이다. 정권은 ‘검찰의 맛’을 알았고, 검찰은 ‘권력의 묘미’를 깨달았다. 그 뒤로 누대에 걸쳐 정권은 ‘인사권’을 지렛대로 검찰을 맘껏 부리고 써먹었다.

그 첫째 수단이 검찰총장 인사다. 1990년 정구영 청와대 민정수석의 검찰총장 ‘직행’은 극단적 사례라 제쳐놓더라도, 역대 총장 가운데 최고권력자와 지연, 학연, 근무연 혹은 생각의 코드가 무관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정권은 인사를 통해 검찰을 한 줄에 꿴 듯 장악했다. 좋은 머리에 출세욕 강한 검사들은 알아서 머리를 조아렸다. 검찰이 중립성을 잃었다고 평가받는 사건들엔 어김없이 인사 혜택을 받았거나, 보상을 갈구하는 검사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런 검찰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한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개혁 1호 대상으로 검찰을 지목했다. 당연히 인사제도부터 손볼 줄 알았다. 대통령이 사실상 낙점한 사람을 3~4명의 총장후보 풀 안에 넣어주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제도부터 대폭 고칠 거라 기대했다. 추천위원 9명 가운데 위원장을 포함해 5명을 법무부 장관이 고른다. 물론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서다. 이러면 시쳇말로 ‘게임 끝’이다.

그래서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의 지난해 권고는 신선하게 들렸다. 추천위원 9명 가운데 3명은 국회가 추천하고, 3명은 민주적 방법으로 선출된 검사 대표를 넣자고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인사를 내려놓으면 검찰의 제도적 중립을 앞당길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거의 모든 유산에 적폐의 낙인을 찍으면서도, 이명박 정부 말기 만들어진 추천위 제도만은 그대로 뒀다. 대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검찰개혁의 상징”(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며 대통령 직속의 수사기관을 창설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대통령이 ‘내 맘대로 인사’를 포기하지 않으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요원하다. “정권 뒤치다꺼리를 하는 총장 모습이 꼭 옛날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 같았다”는 전직 검찰 간부의 토로는 후일담일 수가 없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마피아라는 거악에 맞서다 희생된 검사는 팔코네와 보르셀리노만이 아니다. 모두 68명의 검사가 정의의 제단에 자신을 바쳤다. 그들에게 하나뿐인 생명을 걸게 한 동력이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최소한 집권세력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강희철 법조팀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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