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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악명’도 돈이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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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다. 유명 방송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스타가 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거쳐 이름을 알리면 부와 권력을 거머쥘 수 있다. 이른바 ‘인플루언서(influencer·영향력 있는 개인)’의 영향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미디어 시장 전반을 아우른다.

이들은 지상파를 넘나들고 광고시장을 섭렵한다. 기업과 인플루언서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업체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힘이 커진 인플루언서는 직접 브랜드를 만들고 시장을 연다.

경향신문

일러스트 김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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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다리는 누구나 놓을 수 있지만 아무나 오를 수는 없다.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재능을 살리거나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콘텐츠를 찾아 팔로어를 늘리는 ‘정공법’을 택한다. 반대로 ‘악명’을 통해 인플루언서가 되는 방법도 있다. 폭력과 혐오, 선정적인 콘텐츠로 구독자를 늘리는 방식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일단 사다리에 오르면 과실을 딸 수 있다. 과거는 묻지 않는다. 수지타산만 맞으면 기업에서 러브콜을 보내 광고 모델로 세운다.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이들을 거부하는 반발 여론은 약해진다.

광고시장 지배하는 인플루언서 마케팅

“오늘은 평소 제가 잘하고 다니는 머리 말리는 법을 공유해볼게요.”

이내 영상 속 유튜버는 직접 젖은 머리를 말리며 볼륨 살리는 방법을 설명한다. 유튜버는 틈틈이 자신이 쓰는 헤어뷰티 제품을 소개한다. 3분 분량의 영상 속에 5개의 헤어 제품이 등장한다. 댓글 창에는 “헉, 스타일링 제품을 쓰는 게 답이군요. 열심히 말려도 원하는 만큼 안 살아서 슬펐는데. 제품을 산다”는 댓글이 달렸다.

영상을 만든 뷰티 유튜버는 구독자 3만9000명을 거느린 인플루언서다. ‘단발 c컬펌 스타일링 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해당 영상은 아모레퍼시픽몰의 광고를 목적으로 제작됐다. 최근 광고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전형적인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사례다.

해당 유튜버는 아이돌 메이크업 방법과 뷰티 제품 사용후기에 자신의 일상을 섞어 만든 콘텐츠로 구독자를 모았다. 메이크업 국가자격증 실기시험 준비과정을 담은 영상도 호응을 얻었다. 유튜브 가입 3년 만에 ‘매크로 인플루언서’(구독자 1만~100만명)로 올라섰다.

특정 분야에서 탄탄한 구독층을 보유한 매크로 인플루언서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구독자 500~1만명)의 광고 효과는 유명 연예인을 능가한다. 2017년 한국광고학회에 발표된 <뷰티 인플루언서 활용전략>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유튜브)에서 일반인 인플루언서가 제품을 소개할 경우 연예인 인플루언서보다 소비자의 구매 의도에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KB경영연구소 서정주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SNS 커머스의 성장’ 보고서에서 “상품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반응률’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에게서 25~50%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메가 인플루언서(구독자 100만명 이상) 반응률은 2~5%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인지도는 낮지만 광고 효과가 큰 인플루언서는 광고시장에서 귀한 몸이 됐다. 최근에는 이들을 전문적으로 영입해 광고주(기업)와 연결해주는 이른바 ‘인플루언서 마케팅 플랫폼’ 기업들도 성행을 이루고 있다. 현재 국내 인플루언서 마케팅 플랫폼 기업들이 보유한 인플루언서는 50만명에 달한다. 광고주에게 모델을 공급하고 일종의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은 “특정 개인의 몸값이 높은 산업에서 에이전시와 같은 플랫폼 기업이 활성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앞으로 인플루언서 관련 시장은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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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보겸이 출연한 KT광고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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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과 희롱, 욕설 등 엽기적 행각

문제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과정이다. 인플루언서 가운데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스타가 된 이들도 존재한다. 폭행과 희롱, 욕설을 시작으로 각종 엽기적인 행각을 통해 관심을 끌고 혐오 콘텐츠를 양산해 셀렙(유명인)이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TV의 인기 BJ ‘철구’는 여성 비하와 욕설, 5·18 폭동 발언과 같은 혐오 콘텐츠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됐다. 선을 넘은 방송으로 수차례 방송 정지와 영구정지 등 징계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아프리카TV 측은 ‘특별사면’ 형식으로 철구를 복귀시켰다. 시청자를 끌어모아 ‘돈’이 되는 철구를 끝내 내치지 못한 것이다. ‘앙 기모띠’(일본 성인물에서 유래한 말로 ‘기분 좋다’는 뜻으로 통용) 등 철구가 쓴 비속어는 유행어처럼 번졌고,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철구의 엽기 행각을 본뜬 사건이 잇따랐다. 하지만 강력한 팬덤과 고정 시청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철구를 비호했다. 아프리카TV는 철구에게 2016년 BJ 대상을 수여했고, 철구는 현재 유튜브 구독자 120만명을 거느린 ‘디지털 셀러브리티’가 됐다. 철구가 퍼뜨린 혐오 콘텐츠에 대한 대중들의 거부감은 희석됐다.

악명을 떨쳐서라도 인플루언서가 되면 귀한 몸이 된다. 기업들은 광고를 제안하고 행사 섭외가 줄을 잇는다. 지난 5월 KT는 인기 유튜버 ‘보겸’을 광고 모델로 썼다가 불매운동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보겸은 지난해 데이트 폭력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로, 당시 보겸이 전 여자친구를 폭행하고 금품을 요구했다는 폭로가 나오자 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공개사과한 바 있다.

보겸 광고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자 KT는 “사업자가 광고 모델을 누구로 정하는지 여부는 이용자가 선택하는 부분이 아니므로 회사 내부적으로 진행될 문제다. 고객센터에서 별도로 답변드릴 사항이 없다”고 입장을 밝혀 논란을 키웠다. 결국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보겸 광고는 삭제됐고, KT는 “향후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KT의 사과로 끝이 났지만 당시 불매운동에 맞서 ‘보겸은 문제 없다’며 보겸을 옹호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보겸의 인기와 영향력이 비판여론을 앞섰다면 KT의 대응방식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KT는 지난해에도 보겸을 프로야구팀 KT 위즈의 시구자로 선정했다가 항의를 받고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악명 높은 인플루언서가 얻은 영향력을 기업이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며 “하지만 현재의 여론 지형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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