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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홍콩 시위대의 흔적 지우기…지하철 매표소 10m 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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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6일 홍콩 거리에 집결한 시위대(왼쪽)과 텔레그램 일러스트 이미지. [AFP=연합뉴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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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홍콩 시위대가 이번에는 디지털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정보당국의 디지털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홍콩 시위 참여자들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SNS 사용을 자제하고,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하는 등 온오프라인에서 시위 참가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자신을 알렉사라 소개한 25세 한 여성은 시위에 참여한 뒤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위챗과 알리페이 등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곧바로 가상사설망(VPN)을 설치한 그는 암호화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으로만 외부와 소통했다.

시위대의 흔적 지우기는 오프라인에서도 활발하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최근 홍콩 지하철역 티켓팅 기계 앞에서 일회용 지하철 승차권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소개했다. 그는 "대중교통 카드를 사용할 경우 위치 정보가 남을 수 있다"며 "승차 내역이 시위 참여의 증거로 사용될 것이 두렵다"고 밝혔다. 미 온라인 매체 쿼츠 역시 "홍콩 지하철역 한 구역에 있는 다섯 대의 티켓팅 기계에 적어도 10m의 줄이 뻗어 있었다"며 시위 참가자들이 카드 사용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홍콩 시민들 99%는 충전식 교통 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를 사용한다. 하지만, 최근 시위가 활발해지면서 시민들은 일회용 지하철 승차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식사나 물건을 살 때도 현금을 사용하는 등 카드 내역을 남기 않고있다. 카드 결제시 개인정보와 이동 노선이 모두 노출되기 때문이다.

SNS 사용은 금물이다. 셀카를 찍어 올리지도 않고 글과 댓글을 남기는 것도 자제한다. 길을 걸을 땐 폐쇄회로(CC)TV에 얼굴이 찍힐 것을 우려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정보 당국이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를 동원해 CCTV에 찍힌 얼굴로 신상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경찰이 지난 2014년 우산혁명 때 주요 시위 지도자들의 카드 이용 내역을 추적해 시위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로 내세웠다며 디지털에 자신들의 행적이 남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시위에 참가한 한 20대 학생은 WP에 "지금은 2014년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다"며 "시위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땐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게 넓게 찍는다. 또 단체 채팅에서는 이름을 바꾸고, 전화번호도 심(sim)카드도 따로 사서 사용하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시위를 이끌고 있는 홍콩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의 친민주 세력 지도자 중 한 명인 보니 렁은 WP에 "중국 정부는 자국민을 감시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이라면서 중국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개인을 추적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 "우리는 그것이 홍콩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WP는 홍콩 시위대의 디지털 흔적 지우기에 대해 "디지털 시대 감시 국가에서의 불복종 시위가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쿼츠 역시 "기업과 정부가 점차 개인 데이터를 쓸어담으면서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감시, 그리고 스마트 시티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16일 홍콩에서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의 완전 철폐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거리 곳곳에 집결해 검은 물결이 홍콩을 뒤덮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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