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범죄인 인도법’ 결사 반대하나
‘시진핑과 여섯 여인’ 출판 준비하던
퉁뤄완 서점 5명 실종 기억 생생
법안 통과 시 ‘안전은 없다’고 믿어
퉁뤄완 서점은 홍콩 퉁뤄완의 유명 쇼핑센터인 소고 백화점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서점을 알리는 간판들이 상점가에 걸려 있다. [신경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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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비판하는 반체제 인사나 인권 운동가 등이 중국으로 송환되는데 이 법이 악용될 수 있다고 홍콩인은 본 것이다. 이 같은 홍콩인의 우려는 기우인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예가 있다. 2015년 발생한 홍콩 ‘퉁뤄완(銅鑼灣) 서점 관계자 5명 실종’ 사건이 그것이다.
퉁뤄완 서점은 1994년 린룽지가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2014년 ‘거류(巨流)미디어유한공사’에 매각했는데 구이민하이와 리보, 뤼보 등 세 명이 주주가 됐다. 린은 서점 점장으로 계속 일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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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홍콩 서점은 중국 내 ‘금서(禁書)’를 팔아 재미를 봤다. 금서엔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 투쟁과 고위 지도자 스캔들을 다룬 게 많았다. 가끔 경고를 받긴 했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2012년 말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단속이 강화돼 2013년 ‘중국의 대부 시진핑’이란 책을 출판하려던 천중(晨鐘)서국 출판인 야오원톈이 중국에 갔다가 체포됐다.
퉁뤄완 서점이 타깃이 된 건 시진핑 주석의 사생활, 특히 애정 행각을 파헤친 책 출판을 준비하면서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이 책엔 ‘시진핑과 그의 여섯 여인’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먼저 3대 주주 중 하나인 뤼보가 2015년 10월 14일 사라졌고 3일 뒤엔 태국 파타야 아파트에 있던 구이민하이가 실종됐다. 10월 24일께는 직원 장즈핑과 서점 점장인 린룽지가 선전에 갔다가 자취를 감췄다.
린룽지. [위키피디아 캡처] |
홍콩은 경악했다. 이전엔 중국에 가는 걸 조심만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홍콩에서도, 그 어떤 홍콩인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실종된 5명은 이후 어떻게 됐나. 가장 먼저 사라졌던 뤼보가 2016년 3월 돌아왔다. 이어 장즈핑, 리보가 잇따라 귀환했다. 6월 14일엔 린룽지가 홍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구이민하이는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이들의 실종 사건 배경을 잘 몰랐다. 중국 당국의 괘씸죄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추측만 난무했었다.
실상은 2016년 6월 홍콩으로 돌아온 린룽지가 용기를 내면서 밝혀지기 시작했다. 린은 자신을 조사했던 중국 당국 관계자로부터 퉁뤄완 서점의 고객 명단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고 홍콩에 왔다가 생각을 바꿨다.
16일 홍콩 시위대가 이번 시위를 30년 전 ‘천안문 시위’에 빗댄 플래카드를 들고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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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에 따르면 그는 2015년 10월 24일 홍콩에서 선전으로 넘어가다 붙잡혔다. 이후 열 서너 시간 가량 차를 타고 저장성 닝보의 한 건물로 끌려가 자살방지 시설을 갖춘 방에서 조사를 받았다. 린은 그곳에서 가족과 변호사를 부르는 걸 포기한다는 각서에 서명해야 했고 욕설과 위협 속에 조사를 받았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찍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린은 기자회견에서 “만일 우리가 소리를 내지 못하면 홍콩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며 “이번 일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홍콩인의 인권과 자유와 관련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으로 돌아온 다른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당시 홍콩 정무사(司) 사장이 현재 홍콩특구 행정장관인 캐리 람이었지만 사건 해결에 이렇다 할 역할은 하지 못했다.
한편 린룽지는 캐리 람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을 추진하자 지난 4월 25일 홍콩을 떠나 대만으로 이주했다. 법안이 시행되면 자신이 중국으로 보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사흘 뒤 홍콩에선 13만 명이 나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법안 2차 심의(6월 12일)를 앞둔 지난 9일엔 100만이 넘는 홍콩인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법안이 확정될 경우 홍콩에서 두 발로 땅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그 어떤 홍콩인도 다시는 안전하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이 100만 홍콩인을 최루탄과 고무탄, 벽돌이 난무하는 시위 현장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유상철 베이징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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