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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지역에서] 대통령이 찾은 농촌은 딴 세상? / 명인(命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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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명인(命人)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고흥도 모내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모내기 철이 시작될 무렵, 문재인 대통령이 농촌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읽었다.(<오마이뉴스> 5월24일 보도 ‘문 대통령 “쌀값이 많이 올랐죠? 칭찬해줘야”’ 참조) 읽다 보니 점점 부아가 났다. 기사에 나오는 젊은 농민은 논농사를 지어서 연봉 1억원을 번단다. 논농사에 투자하는 시간은 연간 60~70일이니 농민들은 농촌에서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단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건 대체 어느 나라 얘기야?” 내 소리를 듣고 달려와 기사를 읽은 옆지기가 묻는다. “우리가 아는 농민 중에 농사로만 연간 1억원을 버는 사람이 혹시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모든 농민을 한사람, 한사람 떠올려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명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고흥에서 농사짓는 ㅅ씨, 그는 100마지기(고흥 기준으로 한 마지기는 200평) 논농사를 짓는다. 고흥만이나 해창만 같은 간척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야 너른 들판에서 지으니 사람도 기계도 좀 편하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논농사를 많이 지으려면 이 마을에 몇마지기, 저 마을에 몇마지기, 심지어 면 단위를 넘어가서까지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다. 농기계값에 무는 이자나 농기계에 대한 감가상각비는 포함하지도 않은 생산비를 제외하면 그의 연 소득은 2천만원 정도다. 쌀값이 미친 듯이 올랐다는 지난해에야 추수하고 손에 쥔 돈이 그의 노동력 값, 딱 최저임금 수준이다. 당연히 밭농사를 겸할 수밖에 없다. 3~4천평쯤 되는 밭농사가 풍작이고, 가격도 좋을 때여야 간신히 연평균 농가소득이라는 4천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해마다 양파 농사가 망하거나 마늘 농사가 망한다. 올해는 작년 대비 3분의 1이나 마늘 값이 폭락했고, 심지어 장아찌용 대서 마늘을 많이 심는 고흥의 마늘 농가는 물음병 확산으로 폭락한 가격조차 받지 못하고 집집마다 창고에 마늘이 가득 쌓여 있다. 이렇게 되면 1년 동안 땡볕에서 있는 고생 없는 고생으로 지은 밭농사는 고스란히 빚더미가 된다. 자기 인건비는커녕, 종자값도 건지지 못하는 것. 내가 아는 농민 누구도 농사만 지어도 먹고살 수 있다고는 농사를 권하지 못한다.

가끔 신문에서나 보는 거지만, 고흥에서도 농가소득으로 억대를 번다는 사람이 없진 않다. 극소수에 국한된 대규모 시설재배 농가나 대규모 축산 농가 얘기. 결국 자본의 문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자본화가 농촌 문제, 나아가 식량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국 농업은 전통적으로 복합형이거나 조합형이었다. 논농사를 지어 나오는 짚을 논에 돌려주거나 소에게 먹이고 쌀 팔아서 얻은 수입으로 마늘 종자를 사서 심는 식이어야 농사든 수입이든 순환이 된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끊임없이 농민들에게 점점 더 농업 규모를 늘릴 것을 강요했고, 단일 작물에 올인하라는 단작화를 강요했다. 이제는 시대의 대세라며 첨단화를 주창하면서 엄청난 예산을 스마트팜에 쏟아붓는다. 뒤늦게 수입 개방에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명분이 생겼지만 사실상 애초에 그 시작은 농업 자체의 필요와 요구가 아니었다. 산업화를 위한 노동력을 농촌에서 도시로 유인하기 위해 단행한 농업의 구조조정이었을 뿐.

그 기사를 보고 더 절망적이었던 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정부가 지난해 쌀값을 올린 걸 두고 댓글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대통령이 무인이앙기에 앉아 드론으로 농약 치며 편하게 농사지어 연봉 1억원을 버는 극소수의 농촌 현실을 만나고 장밋빛 미래만 얘기하는데, 점점 살기가 팍팍해지는 도시 서민들이 오른 쌀값에 분노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나? 작년 한해, 농가소득은 10% 올랐지만 자산은 2%가 줄었고 농가부채는 26%가 올랐다. 정말로 농민들이 기사에서처럼 살고 있다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당장, 떼로 농촌에 몰려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태양광 발전소 분양, 월 250만원 노후 소득 보장” 오늘도 집 앞엔 현수막이 펄럭인다. 곡물자급률 23%로 세계 최하위, 식량안보조차 빨간불이라는 나라에서 농사를 포기하라는 유혹에 솔깃할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사는 농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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