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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10세 아동 성폭행 감형 논란에 법원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폭행·협박 여부 입증 안 돼”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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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아동에게 술을 먹인 뒤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년을 받은 성인 남성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17일 법원이 이례적으로 설명자료를 내고 해명에 나섰다.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한규현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35)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보습학원 원장인 이씨는 지난해 4월24일 한 채팅앱을 통해 ㄱ양(10)을 알게 됐다. 이날 자정 이씨는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ㄱ양을 승용차에 태운 뒤 서울 강서구의 집으로 데려갔다. 이씨는 ㄱ양에게 소주 2잔을 마시도록 권했다. 이씨는 술에 취한 ㄱ양이 침대에 눕자 강제로 ㄱ양의 옷을 벗기고, 손으로 ㄱ양의 양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른 후 성폭행했다.

이씨는 재판에서 자신은 ㄱ양이 13세 미만인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또한 합의를 거쳐 관계를 가진 것일 뿐 ㄱ양을 폭행·협박한 사실이 없다고도 했다.

같은 공소사실을 두고 1심과 2심의 판단은 달랐다. 1심은 이씨가 ㄱ양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른 것은 폭행·협박에 해당한다고 보고,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ㄱ양이 경찰 수사과정에서 이씨가 자신을 누른 채로 성행위를 했다고 진술한 점, 그리고 ㄱ양이 어머니에게 ‘이씨가 강제로 성행위를 시도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을 유죄의 근거로 들었다. 이씨도 성폭행 당시 ㄱ양이 자신을 밀어내거나 옷을 벗기는 것을 거부했다고 진술했다는 점도 고려됐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이씨가 폭행·협박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적용했다. 미성년자의제강간죄란 피해자가 13세 미만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간음할 경우 폭행·협박이 없어도 강간죄로 보고 처벌하는 것이다.

이처럼 죄명이 바뀜에 따라 형량이 줄었다. 성폭력처벌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강간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와 간음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날 법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항소심 재판부는 “유일한 직접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이 양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는 방법으로 폭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든 첫번째 근거는 ㄱ양이 약 2시간 동안 피해 사실에 관해 진술을 회피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조사관 등의 종용에 의해 진술을 시작했다”면서 사실상 ㄱ양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든 두번째 근거는 ㄱ양이 ‘이씨에게 직접적으로 폭행·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조사관이 ‘이씨가 그냥 누르기만 한거야?’라는 취지로 묻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라면서 “이를 통해서는 이씨가 누른 ㄱ양의 신체 부위, 이씨가 행사한 유형력의 정도, ㄱ양이 이씨 행위로 인해 느낀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ㄱ양의 영상녹화 진술증거만으로는 폭행·협박 여부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해 항소심에서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하기 힘들다는 의사를 밝혀서 증인신문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해 원칙적으로 강간죄 무죄가 선고돼야 하지만 직권으로 미성년자의제강간죄 유죄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이 강간죄에서 폭행·협박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성폭력의 보호법익이 성적자기결정권이라고 판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 과정에서 얼마나 심한 폭행·협박이 있었는지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한국여성변호사회도 성명서를 내고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여성변호사회는 “10세에 어린 아이에 불과한 피해 아동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고, 소주 2잔을 먹인 뒤 피해아동을 강간한 자에게 법정형의 범위 중 가장 낮은형을 선고했다는 것은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며 “양형 단계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수렴하려는 노력을 통해 법과 사회와의 괴리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이런 결과는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아동 성폭행범을 감형한 ○○○ 판사 파면하라’는 제목의 글은 17일 오후 6시를 기준으로 8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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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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