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의 정치학]유은혜 "서열화 입시경쟁 심화시키는 자사고 평가 통과 못해"
유은혜 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4일 저녁 교육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상산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해 청와대의 반대 지시가 있었다는 것은 왜곡된 보도"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상산고에서 시작된 자사고 재지정 문제는 교육문제에서 정치권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 장면/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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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을 둘러싸고 교육계의 대립이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첫 발표 대상인 전북 전주상산고와 경기 안산동산고가 재지정 기준점수에 미달하면서 일반고 전환 절차를 밟자, 정치권까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가 다음 달 중 전북·경기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라는 상황을 맞는다. 지난 2015년 서울 미림여고 이후 첫 사례다.
교육전문가들은 특정 자사고에 대한 지정이냐, 지정취소냐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 차이에서 발생한 갈등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석빈 우석대 교수는 "보편 교육을 중시하려는 국가기관과 자율적인 특성화 교육을 추구하려는 민간교육기관간 갈등이 이번 상산고 사태로 표면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십년 간 되풀이된 평준화교육과 수월성교육 싸움의 연장선에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지역구 민심을 기반으로 한 국회의원들이 가세하면서 정치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추가 사례 나오나=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고교 체계 개편과 자사고 폐지(자사고 일반고 전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면서 현 정부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고교서열화와 입시경쟁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주된 요인으로 자사고를 지목했다. 천호성 전주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자사고가 본래 설립 취지와 달리 서열화와 지나친 경쟁을 낳았고,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을 유발토록 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설립 취지에 맞지 않게 고교서열화를 심화시키고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자사고는 이번 평가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취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장관은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등 특정 지역에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진 자사고를 겨냥하기도 했다.
유 장관은 "학생들에게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과정의 기회를 준다는 명목으로 자사고를 설립했는데 서울 같은 경우 이명박 정부 당시 너무 급속히 늘어나면서 우수 학생들이 (자사고에) 집중돼 서열화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입시 경쟁이 초등학교까지 확산하면서 우리 교육시스템이 왜곡됐다는 얘기다. 유 장관은 또 "고교 체계를 개편하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국정과제는 변함없이 합리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정부가 시행령을 고쳐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학생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수월성·다양성 교육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은 "정부는 평준화에 경도된 채 고교체계 변화에만 매몰돼 사회갈등을 가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상산고 취소 동의여부 때 '사회통합전형' 쟁점=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재지정 취소 결정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논란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상산고의 경우 자사고 재지정평가 전부터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는 올해 자사고 재지정 기준점수를 기존 60점에서 70점으로 상향 조정해 문턱을 높여놨다. 5년전 평가 때 기준이었다면 통과하고도 남았을 자사고가 존폐위기에 내몰린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상산고의 경우 교육부 지정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31개 평가지표 가운데 '사회통합전형' 평가에 대한 적절성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산고는 재지정평가에서 기준점인 80점에 0.39점이 부족한 79.61점을 받았다. 사회통합전형 지표에서 4점 만점에 1.6점을 받은 게 결정적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회통합전형은 입학정원의 일정 비율을 기초생활수급권자, 차상위계층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뽑는 것이다. 그러나 상산고처럼 애초 자립형사립고에서 출발해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한 학교들은 사회통합전형 선발 의무가 없다.
상산고는 의무사항이 아닌 사회통합전형 선발을 자발적으로 했는데도 교육청이 무리하게 평가지표로 적용했다며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삼옥 상산고 교장은 "예컨대 전북교육청이 시험문제를 내면서 상당히 어렵게 냈을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시험) 범위 밖에서 출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교육전문가들은 이번 자사고 논란은 비단 상산고 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변할 수 있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교육정책에 급작스런 '룰' 변경은 혼란만 초래할 뿐"이라며 "정책의 연속성과 예측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육정책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순간 본질은 흐려지고 진흙탕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세종=문영재 기자 jw0404s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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