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세상은 원래 회색인데 왜 黑白으로 편 가를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소설가 장강명, '산 자들' '지극히 사적인…' 출간

"존엄이 위태로운 한국 사회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 이야기"

"간신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살아 있다는 것 이상의 존엄은 위태로운 사회라고 느껴졌어요. 영화 대사 '살려는 드릴게'처럼 정말 살려만 주는 사회 같아요."

이번엔 한국이 싫어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소설 '한국이 싫어서'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 도발적인 작품으로 화제가 됐던 작가 장강명(44)이 연작소설집 '산 자들'(민음사)을 냈다. 25일 만난 장강명은 "2010년대 말 한국의 상황을 사진으로 보여준다면 가장 꼽고 싶은 10가지 장면을 떠올렸다"고 했다.

10편의 소설로 만들어진 10가지 장면은 대략 이렇다. 해고된 알바생이 악착같이 4대 보험료를 챙겨 받고 쓸쓸히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 함께 대기발령 받은 팀원을 놔두고 혼자 사표를 내는 장면, 목 좋은 지하철역에 노려보듯 마주한 세 개의 빵집…. 그는 "내 DNA의 절반은 저널리스트이니 '왜, 어쩌다 이렇게 됐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장강명은 “한국 사회 최악의 노동 현장 중 하나는 아이돌 산업일 텐데 취재가 어려웠다”면서 “언젠가 섭외가 된다면 장편으로 다뤄 보고 싶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자 출신답게 방대한 취재량이 느껴진다. 취재 방식은 조금 달랐다. "예를 들어 학교 급식 비리라면 기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교장이나 선생님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소설가는 거기서 밥 먹던 애한테도 기분을 물어볼 수 있죠. 현장에서 가장 정신없는 사람에게, 가장 바쁜 날 질문해야 하는 기자의 한계를 소설가가 되고서야 느꼈어요."

한국 사회의 첨예한 갈등을 다루지만 쉽게 선악을 가르진 않는다. 장강명은 "현실에서 한 줄짜리 답은 없더라"면서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 손을 들어주고, 누구를 혼내줘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회색분자라는 비판을 받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이 원래 회색"이라고 답했다. "세상이 회색인 거 뻔히 알면서 본인의 이익을 위해 흰색, 검은색으로 편을 가르는 이들을 싫어합니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냐'는 질문을 하게 될쯤 마지막 단편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에 이른다. 학교 급식 비리 사건에 맞서는 고등학생인 '나'는 "사람은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그른 것을 옳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장강명은 "순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감각 정도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다작(多作)으로 유명한 장강명은 이번 소설집과 SF 로맨스 소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아작)을 함께 냈다. 극도로 현실적인 소설과 공상과학 소설이 동떨어져 보이지만 "사람을 둘러싼 시스템에 대한 관심"으로 엮여 있다. "인물의 내면보단 인물을 둘러싼 환경에 관심이 많아요. 그 세계가 좁아지면 한국 사회, 넓어지면 SF나 판타지의 배경이 되는 거죠. 개인의 의지로 움직이지 않는 구조나 시스템을 포착하고 싶습니다."

[백수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