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로 밥맛 잃는 건 일시적
암이나 간·폐·갑상샘·장 질환 땐
염증 유발 물질 분비돼 식욕 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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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21대 왕인 영조는 82세까지 산 최장수 왕이다. 알려진 그의 건강 비결은 의외로 평범하다. 바로 규칙적인 세끼 식사. 다른 왕과 다르게 고기를 피하고 반찬 수를 줄이며 소박하게 먹었지만 세끼 수라상은 아무리 바빠도 챙겼다. 대신과 회의하는 도중이라도 식사 시간이 되면 밥을 먹으러 자리를 떴고 아들 사도세자가 숨진 날에도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14대 왕인 선조는 오랫동안 식욕부진에 시달린 것으로 유명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소화 능력이 약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잘 체했다. 점점 음식 생각이 없어지고 입맛을 잃어 도통 원기를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TV·동영상 틀어놔야 밥 먹는 아이 신경 써야
이처럼 식욕은 건강 상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식욕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영양소를 공급받기 위한 생리 현상이다. 식욕은 본능이지만 사실 꽤 정교한 과정을 거쳐 조절된다. 뇌의 시상하부가 식사 직후에는 포만감을 느껴 더는 식욕이 당기지 않게 하고, 반대로 위장관이 비어 있는 공복 상태가 오래되거나 체내 에너지가 부족할 때는 식욕 촉진 물질을 분비해 식사량을 늘린다. 사람마다 체중이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는 건 이런 시스템 덕분이다. 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 전혜진 교수는 “식욕이 부진하다는 것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일 수 있으니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식욕부진은 말 그대로 배가 고프지 않고 밥을 먹기 싫은 상태다. 어린아이부터 성인,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식욕부진을 경험한다. 특히 어릴 때는 먹기를 아예 거부하거나 매우 적은 양만 먹고 한정된 몇 가지 음식만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영유아의 10~45%가 이런 식이 문제를 겪는데 대개 자라면서 좋아진다.
이 시기에는 감기나 잦은 구토·설사, 삼킴장애, 위장 질환 등 신체적인 문제가 원인이 아니라면 대부분 식습관 문제다. 고대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윤 교수는 “어린아이의 경우 보호자가 아이에게 음식을 주는 과정이나 아이가 먹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종합적으로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말로 의사 표현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럴 때는 보호자의 행동을 통해 아이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아이가 음식을 완강히 거부하는데도 밥을 계속 먹이는 행동 ▶억지로 아이의 입을 벌려서 음식을 먹이는 행동 ▶아이의 배고픔과 무관하게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양을 먹이려는 행동 ▶음식을 먹이기 위해 TV·동영상·장난감을 주는 행동 ▶밤에 잠자는 아이를 깨워서 밥을 먹이는 행동 등이 계속되면 치료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교수는 “영유아기는 신체의 성장·발육과 뇌의 인지 발달에 중요한 때”라며 “식욕부진의 원인이 질환 탓이라면 이를 우선 치료하고 그렇지 않다면 식이 습관을 교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커서도 식욕부진을 흔히 경험한다. 계절이 바뀌거나 스트레스가 심하고 집중하느라 긴장한 상태일 때 입맛이 없어지곤 한다. 뇌에서 급성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식욕 억제 호르몬을 방출하는 탓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율신경의 균형이 무너지면 위장에도 영향을 준다. 먹어도 소화를 잘 못 시켜 입맛을 잃게 한다. 대부분 일시적인 현상이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기분 전환을 하면 다시 배고픔을 느끼고 식욕이 생긴다. 이런 심리적인 원인이 아닌데도 식욕이 없고 체중이 준다면 암이나 간·폐·갑상샘·장의 질병을 의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몸에 질병이 발생하면 염증 유발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분비되는데 이것이 시상하부를 자극해 식욕이 억제된다.
식욕부진에 가장 취약한 건 어르신이다. 노화로 인해 미각·후각 기능이 떨어진 데다 당뇨병·고혈압·골다공증·콩팥병 등 만성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이 입맛 저하를 일으킨다. 여기에 불량한 구강 상태와 불안·우울 같은 심리적인 요인, 독거·은퇴 같은 환경적인 요소도 식욕부진을 부추긴다. 한 번 떨어진 노인의 식욕이 웬만해선 잘 돌아오지 않는 이유다. 식욕부진이 오면 간단한 탈수 증세와 어지럼증을 겪기 쉽고 대사·전해질 이상이 나타난다. 전 교수는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영양 불균형이 일어나고 면역력이 떨어져 폐렴이나 감염성 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3개월 이상 못 먹는 노인은 치료해야
노인은 식욕부진 상태가 3개월 이상 이어지고 그사이 몸무게가 평소 대비 5% 이상 빠졌다면 영양 치료가 필요하다. 체중 변화가 없어도 외부 활동을 못 할 만큼 기력이 떨어진 노인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갑자기 입맛을 잃었다면 질병의 초기 증상일 수 있으니 다른 병이 생긴 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영양 평가와 함께 혈액·소변 검사 등을 통해 원인 질병이 없는지 확인한다. 복용 약이 문제라면 의사와 상의해 대체약이나 용량 조절을 고려한다. 가장 중요한 건 식이요법이다. 환자의 입맛에 맞춰 식단을 마련하되 가급적 열량과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 위주로 섭취하도록 한다. 식이요법을 해도 호전되지 않는다면 식욕촉진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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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노인 식욕 되찾으려면
식사 시간은 20~30분 넘지 않기
아이가 식사할 때는 주위를 분산시키는 핸드폰·장난감·책은 치운다. 식욕을 최대화하기 위해 식사 시간은 20~30분을 넘지 않도록 한다. 밥 먹기 싫어할 때는 강제로 먹이기보다 그냥 놀게 두고 다음 식사 때 잘 먹으면 칭찬해 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아이는 보호자가 준 모든 것을 먹지 않아도 괜찮다. 먹는 양을 아이가 정하게 해서 언제 배부른지 스스로 알 수 있게 한다.
새로운 음식은 5~15회 꾸준히 먹이기
식사 때는 단백질·곡물·과일·채소·유제품을 고루 준다. 이 시기엔 먹기 간편한 음식을 선호한다. 음식은 씹고 삼키기 편하게 조리하고 성인이 사용하는 것보다 작은 접시·그릇·컵에 담아주며 먹기 쉽게 잘라서 준다. 새로운 식재료는 아주 적은 양을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 5~15회 줘서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한다.
저염식·저지방식 말고 고단백식 하기
만성질환자는 건강을 챙기려고 저염식·저지방식을 고집하곤 한다. 하지만 식욕부진이 있는 노인은 고루 먹는 편이 낫다. 식사 시간을 정해 놓고 밥을 먹을 필요는 없다. 대신에 소량씩 자주 섭취해 열량이 부족하지 않도록 한다. 식사량이 많이 부족할 때는 경장 영양제 같은 고단백 위주의 보충 식품을 먹는 것도 방법이다.
향 채소로 요리하고 양념장 활용하기
포만감을 빨리 느끼게 하는 물은 식후에 마신다. 섬유질이 많은 음식과 양배추·땅콩·브로콜리·커피 등 위장에 가스가 잘 차는 음식은 피한다. 풍부한 향은 식욕을 자극한다. 생강·강황·깨 등 천연 향신료나 깻잎·참나물·쑥갓 등 향 채소를 이용해 요리한다. 맛있게 먹기 위해 양념장과 소스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양치질을 꼼꼼히 하면 단맛·짠맛의 민감도가 증가해 식욕이 향상된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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