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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판문점 가야 볼 수 있는 남자···文은 그를 "건영씨"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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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리포트] 윤건영 "나는 음지에 있어야 하는 사람"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 최근 더불어민주당 관계자가 면담을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이런 답신이 왔다고 한다.

“나는 음지(陰地)에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양지(陽地)로 나가면, 제가 먼저 연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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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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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다. 이후로 그를 봤다는 민주당 사람들은 만나기 어렵다. 그는 주요 인사의 장례식장에 문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하는 경우 외에는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최근 청와대 비서관 출신 인사의 모친상에 참석했을 때도 그는 당 관계자와 기자들을 보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연신 “(연락을 받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판문점에 가면 윤건영을 볼 수 있다”

그런 윤 실장의 동선이 지난달 30일 카메라에 잡혔다.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 회담 전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을 비롯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과 뭔가를 논의했다. 정상회담 직후 한·미 정상의 간의 기자회견 때는 문 대통령 뒤편에 서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뒤에는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비건 대표 등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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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소감 등을 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 뒤편에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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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윤 실장이 회담 전날 밤새 북·미 측과 소통한 뒤 당일 아침 8시에 판문점에 도착해 직접 경호·의전·보도 동선을 상의하는 등 막후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북·미 회담과 남·북·미 3자 회동에서 ‘조연’을 택한 문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동안 윤 실장이 대통령의 국내 일정에 노출된 적은 손에 꼽힌다. 2017년 11월 포항지진 현장, 지난 2월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전문대 졸업식( 부천 유한대)에서 축사를 했을 때 수행한 정도다.

유일한 예외가 대북(對北) 관계였다.

윤 실장은 지난해 4월과 9월에 열린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 직전 북한에 특사로 파견됐다. 그 중간에 있었던 비공개 5월 판문각 회담 때는 아예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고(故) 이희호 여사를 조문하러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판문점에 내려왔을 때도 청와대에선 그가 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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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절단이 지난해 9월 5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환담하고 있다. (왼쪽 앞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서훈 국정원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2차장, (오른쪽 앞부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2018.9.5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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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여권에선 ‘판문점에 가면 윤건영을 볼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윤 실장이 대북문제의 전면에 등장한 건 서훈 국정원장, 정의용 안보실장과 함께 대북 특사단을 맡게 되면서다. 1차 회담 직전인 지난해 3월 방북한 그는 서 원장 등과 함께 평양 고방산 초대소(대표단 숙소)에서 김영철 당시 북한 통일전선부장,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을 만났다.

그해 4월 20일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이 개설됐을 때도 그는 이어폰을 끼고 4분 19초 동안의 시험통화를 확인했다. 그런 뒤 윤 실장이 직접 기자들을 상대로 핫라인 개설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윤 실장이 지난 2년여 동안 청와대에서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 브리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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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배 전 제1부속비서관이 지난해 4월 20일 북측 국무위원회 담당자와 남북 정상간 핫라인 시험 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3시41분부터 총 4분19초간 남북 관계자간 상호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윤건영 실장이 이어폰으로 대화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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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정보의 90%는 아는 지퍼맨”

국정상황실장은 청와대로 집중되는 민감한 정보의 최전선에 있다. 윤 실장이 스스로 ‘음지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윤 실장은 ‘문재인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인연을 쌓은 건 훨씬 오래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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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을 수석 대북특사로 하는 대북 특별사절 대표단이 지난해 3월 5일 오후 성남 서울공항에서 특별기에 탑승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이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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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3년부터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정무기획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이었다.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 당선된 문 대통령은 윤 실장에게 의원실 ‘수석보좌관’을 맡겼다. 수석보좌관은 국회의원의 오른팔이다. 윤 실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그를 ‘윤 보좌관’이 아니라 “건영씨”라고 불렀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원래 하대(下待)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편하게 ‘건영아’라고 호칭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직함 말고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몇 안 된다”며 “따지고 보면 지금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가장 오래 보좌한 사람이 윤 실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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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판문점에 보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에게 고(故) 이희호 여사 별세에 대한 조화와 조의문을 보냈다고 13일 보도했다. 사진 뒤편에 윤건영 실장이 보인다. 2019.06.13.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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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윤 실장의 별명은 의원실 보좌관 시절부터 ‘지퍼맨’이었다. 한번 들어간 정보가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게 입을 걸어 잠그는 스타일이라서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오전에 청와대 핵심인사들을 불러 티타임을 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은 티타임 참석 대상이 다소 넓어졌지만, 문 대통령은 정부출범 초기엔 비서실장 등 3~4명의 참모들만 참석시켜 아침 대화를 했다”며 “윤 실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필참’ 멤버”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윤 실장은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보의 90% 정도는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며 “하지만 윤 실장의 입이 워낙 무겁기 때문에 핵심 참모들도 윤 실장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에 대해 가늠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가장 오랜 측근인 데다 입이 무겁기 때문에 민감한 대북 문제에 그를 사실상 분신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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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민정수석(왼쪽)과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 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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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 윤 실장은 청와대 인근으로 고교생 아들을 불러 식사를 했다고 한다. 청와대 인사는 “24시간 체제로 돌아가는 상황실을 맡다 보니 가족을 볼 시간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아이를 불러서 만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 인사는 “대부분 주7일 근무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요즘에는 퇴근도 하고 토요일에는 격주로 몇 시간 정도 늦게 출근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나도 정치인인데…”

윤 실장은 문 대통령과 같은 부산 출신이다. 부산 배정고를 나와 국민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1998년 서울 성북구의원(무소속)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적 뿌리는 ‘친노무현계’다. 2002년 개혁당 기획팀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개혁당은 민주당 내 노무현 반대파의 흔들기에 반발해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중심이 되어 만든 정당이다. 결국 2003년 노무현 정부가 탄생하자 그는 청와대에 입성해 문 대통령도 만났다.

이후 문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을 계속하곤 있지만, 지난 2016년에는 총선 출마를 고려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당시 당내 비주류들이 ‘친문 패권주의’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하며 당시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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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월 21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유한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셀카 요청에 응하고 있다.현재 부천에 거주하고 있는 윤건영 실장은 이례적으로 당시 행사에 문 대통령과 동행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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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2015년 12월 측근 6명의 불출마를 직접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문 대통령이 직접 실명을 거론한 측근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차성수 금천구청장, 김영배 성북구청장,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 그리고 윤건영 당시 대표 정무특보였다.

이들 중 윤 실장을 포함한 3명이 현재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당시 윤 실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 나도 정치인인데”라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일방적으로 이렇게 실명으로 발표해버리니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면 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당내 일각에선 내년 총선에 윤 실장이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지난 2015년 불출마를 선언하기 직전 주소를 경기도 부천으로 옮겼기 때문에 부천에서 출마하거나 최대 격전지가 될 고향 부산에서 출마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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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절단이 지난해 9월 5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 서훈 국정원장, 김상균 국정원 2차장, 김영철 북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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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청와대 핵심인사는 “부천으로 옮긴 건 아이를 그 지역의 대안학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며 “윤 실장은 사실상 공인된 ‘순장조(殉葬組)’로 문 대통령과 임기를 끝까지 함께할 것이란 전망이 더 우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치인의 행보는 원래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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