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찰 모집 포스터가 붙은 담장 아래서 홍콩의 한 여성이 "캐리 람 행정장관은 더는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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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민의 대규모 반중국·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이 결국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시위대의 반발에 백기를 들고 범죄인 인도법의 입법절차를 진행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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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폐기→죽었다...다급한 정부
9일(현지시간) 홍콩의 유력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람 행정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범죄인 인도법과 관련해 "법안은 죽었다"(bill is dead)고 말했다. 해당 법안의 입법절차에 대해서는 "완전한 실패"라고 인정했다. 시위대의 반발에 사실상 입법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람 장관은 "지난달 18일 나는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러한 불만의 원인은 정부에 있고, 정부가 법안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시민들 사이에 아직 남아 있다"며 "하지만 그러한(입법 재추진) 계획은 전혀 없다. 법안은 죽었다"고 분명히 했다.
람 장관은 송환법 입법 절차에 대한 표현 수위를 조절해왔다. 지난달 15일에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보류"라고 표현했다가 지난달 18일에는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지난 1일 홍콩 반환 22주년을 맞아 입법회 건물을 점거하는 등 반발 시위의 수위를 높여왔다. 람 장관의 이날 "죽었다"는 표현은 송환법 폐기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담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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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시위 멈추지 않을 것"
그러나 람 장관의 선언에도 최근 더욱 격렬해진 시위대의 거리 행진은 쉽사리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시위대는 의원들이 송환법을 다시 논의하거나 표결에 부칠 수 없도록 즉각적이고도 완전한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완전한 폐기는 이번 입법회가 종료되는 2020년 여름이 지나야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람 장관의 언어를 주로 문제 삼았다. '죽었다'는 표현이 법안 폐기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람 장관의 '항복선언'이 나온 직후 시위대를 주도하고 있는 지미 샴 민간인권전선(CHRF) 대표는 영문과 표준 광둥어로 성명을 내고 "홍콩 법이나 입법회의 모든 법적 절차에서 '죽었다'는 단어는 없다"며 "(람 장관) 스스로 법의 원칙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정부가 우리에게 법을 지키라고 강요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시위대는 또 람 장관이 위선적이라고 주장했다. 람 장관이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시위대와의 직접적인 대화는 없었다는 것이다.
보니 렁 CHRF 대변인은 "람 장관은 젊은 시위대와 직접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며 "시위대는 지난 일주일여 동안 거리에서, 장관의 집 밖에서, 입법회 밖에서 람 장관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쳤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행진, 집회 등을 이어나가기 위한 일정을 추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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