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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이란 핵합의 4주년…환호에서 전쟁의 공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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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4일, 2년여 협상 '진통' 끝 중동 최대 난제 역사적 합의

2017년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뒤 존폐위기 치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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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핵협상을 타결하고 기뻐하는 협상 참여국 외무장관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2015년 6월 27일 여름이 시작된 오스트리아 빈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주요 6개국), 이란의 외무장관이 모였다.

2년여간 이어진 이란 핵협상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세계의 이목이 빈에 쏠렸다.

최후의 협상장에 모인 7개국의 외무장관은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주재하는 회담장에서 타결 시한을 사흘 앞두고 막판 이견을 치열하게 조율했다.

비공개 회담장 밖까지 고성이 들릴 정도로 협상은 뜨거웠다.

일이 잘 풀렸다면 핵협상은 1년 전인 2014년 7월 20일에 끝나야 했지만 중동의 최대 난제 중 하나인 이란 핵문제는 해법을 낳는 데 진통이 더 필요했다.

2014년 11월 24일로 시한을 미뤘고 다시 2015년 6월 30일 한 번 더 '데드라인'을 연장한 터였다.

한계점인 6월 30일, 모게리니 고위대표는 핵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는 나쁜 소식과 7월7일까지 시한을 한 주 더 연기한다는 좋은 소식을 동시에 전했다.

7월 7일이 되자 시한은 이틀 뒤인 9일로 미뤄졌고, 다시 12일로 넘어갔지만 협상장 주변에선 시한은 무의미해졌고 어떻게 해서든지 협상을 성사하려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비로소 7월 14일 18일에 걸친 마라톤협상 끝에 역사적인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발표됐다.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없도록 핵프로그램을 동결·축소하고 대신 미국과 EU, 유엔은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빅 딜'이 이뤄진 것이다.

핵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7월 14일 밤 이란 테헤란 거리는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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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4일 밤 핵협상 타결을 기뻐하는 테헤란 시민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후 핵합의에서 정한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이란의 과거·현재 핵프로그램을 사찰하고 2015년 12월 핵합의를 이행했다고 확인해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혹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드디어 예상보다 반년 정도 이른 2016년 1월 16일 이란은 핵무기 관련 국제 제재에서 탈출했고 '정상 국가'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2016년은 이란에 오래간만에 찾아온 전성기였다. 원유 매장량 4위, 천연가스 매장량 1위(발표 기관에 따라 2위), 인구 8천만의 이란으로 향하는 국제선 여객기는 표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항상 만석이었다.

당시 이란에 진출했던 한국의 한 대기업 관계자는 "2016년 초 테헤란은 하루에 양해각서만 1천장이 날아다녔다. 외국 회사의 뜨거운 구애를 받는 이란 정부와 기업은 '갑 중의 갑' 이었다"라며 달아오른 이란의 분위기를 기억했다.

이란 역시 제재로 부진했던 에너지, 교통, 운수 등 사회 기반시설에 대한 외국의 투자를 부지런히 서둘렀다.

핵합의의 주역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서로 초청하려는 '러브콜'이 쇄도했다.

좌초 위기를 수차례 넘겨 이란 핵협상이 타결될 수 있었던 데는 미국과 이란의 내부 정치 상황이 맞아떨어진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장기간 제재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은 이란 국민은 2013년 서방과 핵협상으로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중도·개혁파 하산 로하니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이슬람국가(IS)의 창궐로 중동 정책이 실패했다는 비난에 직면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란 핵협상을 임기 중 가시적인 외교 성과를 낼 수 있는 '테마'로 삼았다.

미국과 이란의 정치, 실리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외교로 이란 핵문제를 푸는 장면을 만들어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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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AP=연합뉴스자료사진]



이란이 '페르시아 제국'의 위용을 되찾을 가능성이 엿보일 때쯤 미국에서 예기치 못한 대형 변수가 생겼다.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그가 선거운동 기간 이란 핵합의를 '최악의 거래'라고 공격하면서 대통령이 되면 당장 파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 대부분은 이란에 적대적인 보수표를 결집하려는 정치적 언사로 해석했다.

이란 핵합의가 미국과 이란의 양자간 합의가 아니라 유럽(영·프·독)과 러시아, 중국이 함께 서명했고 유엔 안보리가 결의로 이행을 보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7년 1월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사실상 전 세계의 반대와 우려에도 자신의 '공약'을 실제로 이행했다.

IAEA가 이란이 핵합의에서 약속한 대로 핵프로그램을 더 확장하지 않았다고 분기마다 사찰보고서로 확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10∼15년 한시적으로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제한한 현행 핵합의는 이란이 핵무기를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부족하다는 '불신'을 끊임없이 내보였다.

결국 설마 핵합의를 파기하겠느냐는 국제 사회의 의심을 뒤집고 지난해 5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핵합의에서 완전히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전면 복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예고한 대로 지난해 8월과 11월 이란 경제를 고사시키겠다면서 핵합의 이전 상태로 대이란 제재를 되살렸다. 이에 그치지 않고 미 행정부는 '최대 압박' 전략을 천명하고 전례없이 추가 제재를 가했다.

미국은 이란에 새로운 핵협상을 하자고 이란에 제안했으나 이란의 핵·탄도미사일 포기, 역내 개입 금지 등 이란에 사실상 백기 투항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선행 조건을 내걸었다.

역사적 핵협상 타결로 대이란 제재가 해제된 지 1년 반 만에 핵합의가 존폐위기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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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합의 위기[PG]
[최자윤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유럽 서명국이 핵합의를 계속 지키겠다고 했지만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밀물처럼 이란으로 앞다퉈 진출한 외국의 돈과 인력은 썰물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이란이 핵협상에 임했던 가장 큰 목적은 원유 수출을 재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제재로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외국 기업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면서 이란이 원유를 수출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로 줄이겠다고 위협했다.

올해 들어 미국의 최대 압박 전략은 더 위력을 과시했다. 경제적 압박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이란에 압력을 가했다.

올해 5월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 편대를 걸프 해역에 조기배치했고, 이란과 전쟁할 수 있다는 압박 카드도 꺼내 보였다.

되살아 날 조짐이었던 이란 경제가 미국의 제재로 다시 어려워졌지만 이란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탈퇴한 지 1년이 된 5월 8일 '전략적 인내'를 끝낸다면서 60일 단위로 핵합의 이행 범위를 축소하겠다고 맞대응했다.

1단계 조처로 저농축(3.67%) 우라늄과 중수의 저장한도를 넘겼고, 2단계 조처로 핵합의에서 정한 우라늄의 농축도를 넘겨 4.5%까지 올렸다.

이란은 그러면서 유럽이 핵합의에서 약속한 대로 이란산 원유 수입과 금융 거래를 재개하라고 요구했다.

유럽에 제시한 시한은 9월 5일까지로, 유럽이 이런 요구를 실행하지 않으면 우라늄 농축 농도를 더 올리겠다고 경고했다.

이 와중에 오만해 유조선 피격, 이란의 미군 무인정찰기 격추, 친이란 예멘 반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교전 격화, 영국의 이란 유조선 억류 등 악재가 잇따라 터졌다.

북한, 리비아 등 반미 진영의 핵문제 합의가 역대로 성공한 역사를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파기로 불거진 이란 핵합의 위기도 타결 4년 만에 이런 사례를 되풀이할 최대의 위기에 처했을 뿐 아니라 핵협상 타결로 후끈했던 중동의 평화 무드는 전쟁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경색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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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해역에 배치된 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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