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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12년, 함께 밀고 온 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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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홈플러스 7월1일 1만4283명 정규직화

세 사람이 돌아보는 비정규직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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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 12년 시간을 사이에 둔 전혀 다른 풍경이 있다.

2019년 6월18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월드컵점. 비가 내렸고 홈플러스 일반 노동조합(일반노조) 소속 노동자들은 비옷을 챙겨 입고 몰려들었다. 손님을 맞는 월드컵점 노동자들이 전을 부쳐 날랐다. 다른 노동자들은 유행가를 따라 춤추고 노래했다. 비옷은 어느새 반쯤 벗어둔 채다.

일반노조는 해마다 이곳에서 ‘월드컵 문화제’를 연다. 2007년 홈에버-이랜드 투쟁을 기억하자는 의미다. “내년부터는 월드컵 문화제 대신 다른 행사를 준비해볼까 논의하고 있다”고 이종성 일반노조 위원장이 말했다. 월드컵점에서 매년 외쳐온 ‘꿈을 이뤘기’(2019 월드컵 문화제 포스터 문구) 때문이다. 홈플러스 무기계약직 노동자 1만4283명은 7월1일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었다. 점유율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는 1년 미만 직원(228명)을 제외한 전 직원이 정규직인 회사가 된다. 자회사 방식이나 안정성만 보장한 무기계약직 전환이 아니다.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지만 다른 이름 붙일 것 없이 그저 ‘정규직’이다. 이전 정규직과 같은 임금협상 영향 아래 놓이고, 같은 처우를 보장받는다.

12년 만의 반전



2007년 6월30일 홈에버(홈플러스) 월드컵점. 하늘이 조금 흐렸고 300여 명 노동자는 마트를 점거했다. 점거한 노동자 가운데는 정규직도 있었고 비정규직도 있었다. 모두 하늘색 티셔츠를 똑같이 나누어 입었다. 티셔츠에는 “비정규직 차별과 해고를 중단하라”고 적혀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530여 명(뉴코아 포함) 해고로 시작된 이 싸움은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싸움이 됐다. 2년의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한을 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은 해고와 외주화로 대응했다. 21일 뒤 경찰은 바리케이드 대신 쌓아놨던 카트를 무너뜨리고 진입했다. 노동자들은 팔을 겯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너희들이 뭔데!” “이거 놔!” 울며 소리 질렀다. 모두 끌려나왔다. 노조 지도부 3명이 구속됐고 167명이 연행됐다.

“12년 전과 지금을 견줘보면 이런 극적인 반전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싶다.” 이남신 한국 비정규노동센터 센터장이 당시를 떠올렸다. 이랜드 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홈에버는 이랜드그룹에 속해 있었음)으로 현장에 있었던 그는, 이제 비정규직을 연구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일을 한다. “극적인 두 순간만 떠올리기 쉽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다. 정부가 힘준 공공부문 정규직화에서도 허점이 드러나는 마당에 민간기업에서 이런 정규직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이 센터장의 말처럼 홈플러스 정규직 전환은 되짚어봐야 할 이례적인 ‘사건’에 가깝다. SK브로드밴드 설치기사,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처럼 몇몇 민간기업이 정규직화에 나섰지만 대부분 새로운 자회사를 세워 고용하거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데 그쳤다. 안정성은 보장하되, 기존 정규직과 구분하는 방식이다. 그나마 케이블티브이 업체 딜라이브 정도가 직접고용 형태로 외주 직원을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이에 견줘 규모가 크고 단 한 번에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다는 점에서 또 다르다.

지도부 해고와 맞바꾼 무기계약직



무엇이 이런 정규직화를 가능하게 했을까. 마지막이 될지 모를 월드컵 문화제에 있었던 ‘세 사람’(이경옥 전 이랜드 일반노조 부위원장, 이종성 일반노조 위원장, 박옥희 홈플러스 구월점 노동자)이 풀어놓는 지난 12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설득과 이해,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 시간이었다.

이경옥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비정규직특별위원장의 이야기는 2008년 11월13일부터 시작됐다. 홈에버 월드컵점 점거 이후에도 이어져 510일을 끌어온 이랜드-홈에버 투쟁에 ‘종지부 찍던 날’이다. 그는 그때 이랜드 일반노조 부위원장이었다. 결과는 성공이라고도 실패라고도 말하기 어렵다.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회사와 합의했다. 완전한 정규직은 아니었다. 대신 자신을 포함해 정규직이었던 12명 노조 지도부는 해고당했다. 복직투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완전한 정규직화를 포기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남은 이들에게 하며 회사를 나왔다. “그나마 저는 노동운동 판에라도 남았지만 그때 회사를 나간 사람 중에 연락 닿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아요. 다들 너무 아팠던 거예요. 결국 이 정도 성취를 위해 싸우고 해고당했나 황망했던 거죠.” 당시 싸움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카트>가 개봉했을 때도, 지난해 12년차 이상 비정규직만 먼저 정규직으로 전환됐을 때도 이 특별위원장이 울음부터 터뜨린 이유다.

그에게는 애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가는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2003년 회사와 첫 단체협약을 맺은 뒤 회사 몰래 비정규직에게 노동조합 가입 원서를 돌렸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고용 유연화 바람을 타고 마트 전체에 비정규직 수가 빠르게 늘었다.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회사를 대표하는 싸움은 당연히 비정규직 투쟁이어야 하기도 했고, 정규직 조합원만으로는 머릿수에서 밀리고 결국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계산도 있었죠.”

올해 들어 그나마 연락이 닿는 해고자 몇몇과 만났다. 지난 3월 전 직원의 정규직화가 합의된 뒤다. 이들을 비롯해 2007~2008년 싸움에 참여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엮어 내년쯤 책으로 낼 생각이다. “‘그때 해고가 아무 의미 없는 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위로가 됐다’고 말씀하시는데, 노동 현장에 남아 있던 제가 조금이나마 빚을 갚은 것 같더라고요. 어쨌든 그때 죽기 살기로 같이 가야 한다고 했던 믿음이 면면히 이어져서 이렇게 된 거라고 서로 다독였어요.” 이경옥 특별위원장은 올해에야 비로소 끝까지 울지 않고 월드컵 문화제에 있을 수 있었다.

이종성 일반노조 위원장은 이경옥 특별위원장이 해고당하던 순간 그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평범한 정규직 조합원이었다. 사무실을 나와 마트 현장 매니저로 일하면서 뒤늦게 불합리한 회사 상황을 봤다. 노동조합 활동을 제대로 시작했다. “기왕 하는 거 앞에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2017년부터 일반노조 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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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만의 싸움으로는 고립된다”



그사이 회사의 주인은 달라졌고(이랜드→삼성물산·테스코→MBK파트너스) 간판도 홈에버에서 홈플러스로 바꿔 달았지만 노동조합의 ‘비정규직 차별 철폐’ 구호는 더 강해졌다. 조합 구성 탓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합원이 절반씩 차지했던 2007년에서 더 나아가 최근에는 비정규직 조합원 비중이 일반노조에서만 70% 넘는다. 홈플러스의 또 다른 노동조합인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 지부는 조합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마트의 노동구조가 비정규직 위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정규직만으로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2000년대 초 이경옥 특별위원장의 생각대로다. 노동조합 초기부터 비정규직을 노동조합에 들여왔던 덕에 독특하게도 홈플러스는 협상 가능한 노동조합이 모두 비정규직 중심이다. 복잡한 분할 합병 과정에서 현재 홈플러스는 두 개 법인으로 나뉘어 지점들이 소속되고, 이에 따라 노조도 둘로 갈려 있다. 다만 두 노조는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을 함께 진행한다.

임금협상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좁히는 쪽으로 기울었다. 오랜 기간 정규직 임금 인상률을 낮은 수준에 묶어두는 대신, 비정규직 임금을 빠르게 올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며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비정규직 임금 인상에 더 속도가 붙었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정규직에서 불만이 나온 것은 자연스러웠다. 이마트 같은 다른 유통업체에 견줘 홈플러스 정규직 임금은 70% 수준이다. 정규직들의 볼멘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종성 위원장은 “비정규직과 함께 가지 않으면 이나마 목소리도 낼 수 없다”고 설득했다. 사실이 그랬다.

홈에버가 홈플러스로 바뀔 당시(2009년)만 해도 30% 정도에 이르던 정규직 초봉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지난해 5%까지 줄었다. 회사에 정규직 전환 부담은 그만큼 가벼워졌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매년 몇십원 몇백원을 두고 갈등이 생기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어 복잡하게 임금협상을 이어갈 바에야 차라리 전원 정규직화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번 정규직화는 표면적으로 회사가 먼저 제안했고 그 제안을 마트노조가 받아들인 뒤, 일반노조도 수용하는 형태였다.

그렇게 홈플러스 인천 구월점에서 일하는 박옥희(51)씨는 입사 10년 만에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월드컵 문화제를 찾았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는 묘한 풍경이었는데, 기쁜 속내를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저도 막 웃다가 지난 12년 기록 영상을 틀어주는 데, 보고 있자니 울컥하더라고요. 아, 우리가 저렇게 정규직이 됐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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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한목소리 낼 수 있으니



7월10일 박씨는 홈플러스 정규직 선임(정규직 가운데 가장 낮은 직급)으로 농산물 판매대에 서 있었다. 채소 상자를 옮기고 시간에 맞춰 마이크를 들고 ‘특가’ ‘세일’ 같은 단어를 외치고, 폐기할 채소와 다시 저장해야 할 채소를 갈라 처리하는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점장님이 우리는 어차피 정규직처럼 일했으니까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정규직이 됐어도 아직 실감은 안 난다. 임금수준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정규직이 된 대신 임금 상승폭은 예년보다 줄었다. 온라인 배송 같은 새 사업은 늘리면서 인력은 더 늘리지 않는 회사가 여전히 야속하다. “그래도 정규직, 비정규직이 서로한테 미안해하고 고마워할 필요 없이 이제 한목소리로 회사에 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변한 것이 많지 않지만 가끔 기쁜 순간이 삶에 끼어든다. “축하하는 손님도 많고 어떤 손님은 ‘여기 다 정규직이라는데 입사하려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인사과에 가서 여쭤보시라’고 안내하고, 우리끼리 웃었어요.” 홈플러스 월드컵점의 격한 투쟁이 기쁨으로 뒤바뀐 12년 사이, 박씨는 이제 누군가 꿈꾸는 직장인이 됐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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