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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신비롭고 놀라운 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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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하수도에서 나는 소리 들은 뒤

전세계 누비며 경이로운 소리 수집

왜 그런 소리가 나는지 과학적 설명

“주변의 별난 소리에 귀 기울여보시길”



한겨레

지상 최고의 사운드-전 세계의 경이로운 소리를 과학으로 풀다
트레버 콕스 지음, 김아림 옮김/세종서적·1만7000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오리의 꽥꽥 소리는 메아리치지 않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오리가 내는 소리는 정말로 메아리치지 않을까? 이런 궁금증으로 풀로 덮인 둔덕에서 반쯤 엎드려 ‘데이지’라는 이름의 오리와 인터뷰를 한다. <지상 최고의 사운드>의 저자 트레버 콕스의 모습이다. 영국 샐퍼드대학의 음향공학과 교수인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놀랍고 예상 밖의 절묘한 소리들, 경이로운 소리들”을 찾아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면서 시각의 지배를 받는 우리의 감각이 풍요로운 소리의 세계로 열리도록 돕는다. “더 잘 듣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음향 생태학자들은 이를 ‘귀 청소’라고 부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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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음향학 전문가인 그는 소리 수집가가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수십 년 동안 소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지만 나는 여전히 뭔가를 놓치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 소음을 제거하느라 바빠서 소리 그 자체를 듣는 것을 잊고 있었다.”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를 위해 지하 6m의 하수도에 내려갔다가 종유석과 원통형 하수도가 만들어내는 “보석 같은 놀라운 소리”를 들은 게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음향측정기를 들고 소리의 경이로움을 추적한다. 책은 그가 소리를 탐색한 장소들과, 왜 그곳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지를 음향학·물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먼저 ‘반향’(reverberation), 즉 어떤 단어나 음표의 소리가 정지되고 나서 실내에서 되튕기며 들리는 소리를 탐구한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며 음향을 활용했다고 한다. 동굴 입구에서 4~5번 총을 쏘고 음향 결과를 녹음해 작전의 실행 가능성을 살폈다. “동굴이 나뉘는 곳과 폭이 좁아지는 곳, 큰 굴이 있으면 소리가 울리는 방식이 달라졌다.” 소리의 울림을 듣고 동굴 구조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면 지구에서 소리가 가장 잘 울리는 곳은 어디일까? 저자는 여러 곳을 탐험한 뒤 스코틀랜드 인친다운에 있는 석유 저장 복합단지라고 결론 내린다. 1930년대 독일의 군사력 강화에 대비해 산비탈 깊숙한 곳에 극비로 지은 원유 저장 탱크다. 이곳은 125㎐(헤르츠)에서 잔향 시간(소리가 사그라져 침묵으로 바뀌는 시간)이 112초에 이르렀다.

최근에야 과학자들은 선사 시대 고고학 유적의 음향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소리는 오늘날보다도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글로 된 기록이 남겨지기 전에는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메시지를 기억한 다음 전달하는 것이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예리한 청취 능력은 포식자를 피하거나 경쟁 상대의 공격을 물리치고, 식량을 구하려고 동물을 뒤쫓아 사냥하는 데 필요했다.” 소리는 조상들의 동굴 벽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퐁 드 곰과 라스코의 깊은 동굴에서는 큰 소리를 내는 말, 황소, 들소, 사슴 그림이 소리 반향이 큰 구역에서 발견되는 반면 조용한 고양잇과 그림은 동굴의 음향이 나쁜 구역에서 발견된다.” 발굽 달린 동물들은 큰 소리를 내지만 고양이는 조용하다. 우리 조상들이 유적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이해하려면 음향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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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모래들도 있다. 찰스 다윈(1809~1882)은 칠레의 엘 블라도르 언덕에 대해 “현지인들은 이 언덕을 ‘포효하는 자’ 또는 ‘고함치는 자’라고 불렀다”고 기록했다. 고대 중국의 한 기록은 명사산(밍샤샨) 사구에서 벌어진 축제를 “단오절 축제가 오면 여자와 남자들이 사구 아래로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는 관습이 있는데, 그러면 모래에서 천둥처럼 우르릉대는 커다란 소리가 났다”고 묘사했다. 저자는 모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켈소 사구를 네 발로 기어서 탐험하기도 한다.

만약 소리가 전혀 없다면 어떨까? 저자가 교수로 있는 샐퍼드대학에 ‘무향실’이 있다. “하지만 이곳이 완전히 고요하지는 않다. 여러분의 몸 내부에서 나는 소리는 무향실에서도 약화시킬 수 없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감각의 박탈을 경험할 수 있는” 소금물 부유 탱크에 들어가 2시간 동안 소리의 부재를 경험한 뒤 불안정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소리의 부재가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사람들이 활동하는 소리를 들으면 스트레스가 줄어드는지도 모른다. 카페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조용한 잡담은 긴장을 풀어주며 그렇게까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지구 밖 우주선의 내부는 고요할까. 저자도 우주선 내부를 상상할 때 무중력 상태에서 평온하고 고요하게 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우주 왕복선 비행에 대한 연구 결과, 승무원들에게서 일시적인 부분 난청이 발견되었을 정도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은 너무 시끄러워서 비행사들은 청력에 손상을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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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란 이스파한의 이맘 모스크의 메아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10t짜리 악기 ‘아이올로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예측 불가능한 소리를 내는 영국 블랙풀의 ‘파도 오르간’, 작게 말할수록 더 크게 들리는 ‘속삭이는 회랑’ 등 많은 사례를 통해 음향 효과의 원리들을 설명한다. 종 소리를 탐구하면서는 우리나라의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을 다룬다. “종은 대칭, 또는 그보다 대칭의 부재가 울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종이 완벽한 원형이 아니면 비슷한 주파수의 두 음이 함께 울린다. 서양에서 교회 종을 새로 만들 때 주조 공장에서는 보통 이런 떨림을 피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효과가 음질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주변의 별난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권한다. “주변의 경이로운 음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경청한다면, 더 좋은 소리를 내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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