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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한일 무역전쟁 중재 위한 미국 활용법-美 IT기업에도 피해 가능성 부각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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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사상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를 들고 미국에 맞선 것처럼 일본은 반도체 소재를 무기로 꺼내들었다. 일본의 실행력을 얕잡아 봤던 한국 정부는 일본이 교섭 자체를 거부하는 등 완강한 태도로 나오자 당황하고 있다. 결국 일본에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인 미국에 공식적으로 중재를 요청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임기를 시작한 이래 한일관계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중립적 태도를 보여왔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관망세다. 전임 오바마 정권이 위안부 문제 중재를 위해 2014년 한일 정상 간 만남을 주선하는 등 적극적 개입을 했던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미국 입장에서 사활적 이익이 걸리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뒷짐을 지는 것이 트럼프 정권의 외교 노선이다.

▶미국이 한국편 들어준다는 보장 없어

동북아시아 역사 전문가인 다니엘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의 몰이해와 방관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한일관계 악화는 미국 리더십의 실패”라며 “미국은 두 동맹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개입과 중재를 해야 한다. 양국 모두 미국의 개입을 환영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특히 1965년 한일협정을 미국이 중재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해방 뒤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한일 간 화해를 종용해왔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공산권을 견제하기 위해 패전국 일본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군사동맹까지 맺었다. 오바마 정권 당시인 2015년에는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군사협력의 지리적 제한까지 없앴다. 역시 중국의 역내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한국전쟁 참전을 계기로 1953년 맺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미동맹을 탄생시켰다. 한국과 일본은 이처럼 미국과의 ‘3각 동맹’으로 묶여 안보적 이해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위비 증액 요구에서 보듯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의 전략적 가치와 역사적 맥락에 큰 관심이 없다. 물론 만약 한일 갈등이 격화돼 동북아 전략의 핵심축이 흔들리는 상황까지 우려될 경우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보다 가까운 해법은 중국의 반사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과 미국에도 경제적 피해가 미칠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빨리 움직일 수 있다.

일단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 정부가 먼저 미국에 ‘긴급 구조 요청(SOS)’을 치기 시작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만났고 외교부 국장급도 국무부를 찾아갔다.

다만 한국의 대응 논리는 더 치밀하고 정교해야 한다. 강제징용에 대한 사법부 판단에 대해 경제보복을 하는 것이 ‘비례성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는 도식적이다. 스나이더 교수는 일본 기업들도 징용 보상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고 한국 논리를 반박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도 먹히기 어렵다. 트럼프 정부는 WTO 무용론을 편 지 오래다.

그보다는 미국 IT 업계의 이해관계를 깊이 파고드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메모리 분야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은 내심 반사이익을 기대한다. 반면 한국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수입하는 애플, 퀄컴, 인텔, 델 등은 수급 불안이 반가울 리 없다.

다만 미국이 중재에 나서더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이 형성될 것이란 기대감은 낮추는 것이 낫다. 아베 정권은 트럼프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형성하는 데 엄청난 공을 들여왔다.

워싱턴 정가에 일본이 미치는 영향력도 막강하다. 행정부와 의회의 정책 결정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싱크탱크에는 일본 정부와 민간의 자금이 막대하게 투입된다. 이 돈은 다시 대학으로 흘러가 일본에 편향된 아시아 전문가 육성으로 이어진다. 강제징용의 주범인 미쓰비시, 미쓰이도 후원금을 낸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honzu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7호 (2019.07.17~2019.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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