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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크리틱] 서부극 이야기 /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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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영준
열린책들 편집이사


전세계를 향해 세시간 동안 무제한의 국가 프로파간다를 행할 기회가 있다면 뭘 해야 할까? 답은 자국 유명 문화 예술인들을 총출동시켜서 보여주는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보면 어느 나라도 그 이상 좋은 수는 내지 못한 듯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세계를 지배해온 영국 팝음악에 집중했다. 우리 무의식에 박혀 있는 히트곡과 스타들의 50년치를 분 단위로 토해 내는 비현실적인 장관에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은 고전 작가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수만명이 운집한 경기장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얼굴이 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드문 경험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은 폐막식 메들리에 뜻밖의 메뉴를 슬쩍 끼워 놓았다. 고전 러시아 음악들 사이에 미국 영화 <자이언트>(1956)의 주제곡이 삽입되었던 것이다. 알다시피 이 영화는 제임스 딘의 마지막 출연작. 무일푼의 텍사스 카우보이가 유전을 발견하여 재벌이 되지만 원하는 여인의 사랑은 끝내 얻지 못한다는 극히 미국적인 주제의 영화다. 그런데 작곡가가 러시아 출신의 디미트리 티옴킨이다.

티옴킨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공부했고 혁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었다. 오스카상을 네번 받았다. 그의 장기는 서부극이었다. <하이 눈> <오케이 목장의 결투> <리오 브라보> <알라모> 등 고전 서부극은 이 러시아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자이언트>나 <알라모> 주제곡을 다시 들으면 여전히 미국 음악 같으면서도 러시아 합창 음악 비슷한 요소가 떠오른다. 소치 올림픽 폐막식은 세계로 송출되었지만 <자이언트> 부분만은 미국을 정조준해서 발사된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보고 있나 미국인들? 러시아에 감사하시지!’) 텍사스 비공식 주가(州歌)라 할 이 음악이 나오자 많은 텍사스 사람이 혼란을 느꼈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그 순간 텍사스 재벌 조지 부시 가문이 미국을 통치하고 있지 않은 게 아까웠을 것이다.

미국적인 것에 대한 러시아인의 기여를 일방적으로 과장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일본인도 서부극에 기여했으니 말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여럿은 사무라이 웨스턴, 즉 일본 옷의 서부극이다. <7인의 사무라이>(1954) 등을 미국인들은 감탄하며 역수입했고 이후 서부극 장르에는 구로사와의 영향이 감지된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설명이지만, 과연 미국인들은 구로사와의 무엇에 끌린 것일까? 실은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말년의 인터뷰에서 구로사와는 <7인의 사무라이>의 여러 원천 중 하나로 파데예프의 <궤멸>(1927)을 들었다. 파데예프는 스탈린 시대 어용 작가로, <궤멸>은 내전기 파르티잔 이야기다. 그 이상의 언급은 없으나 구로사와는 20대에 일본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연맹 시절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다시 읽었을지는 모르겠다. 80년대 한국에도 번역됐지만 읽기가 좀 힘든 소설이니까. 그러나 이념과 설교를 걷어 내면, 모습을 드러내는 건 ‘제7기병대’류의 서부극이다. 무대가 러시아 극동일 뿐이다. 19세기 말부터 서부 소설 붐이 일었던 러시아는 토착 웨스턴인 ‘오스테른’(동부극)이 나올 정도였다. 할리우드에 온 티옴킨이 서부극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문화는 서로 모방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연원과 소유권을 따지는 게 부질없는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명해 보이는 장르도 조금 더 살펴보면 누가 누구를 모방했는지, 무엇이 누구로부터 비롯됐는지 결국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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