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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소설로 쓰면 0원, 영화로는 수천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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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조선일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해마다 12월이면 깜짝 놀랍니다. 신춘문예 응모자 수. 책 읽는 사람은 그렇게 드물다는데, 쓰겠다는 사람이 이리도 많으니까요. 경제적 논리는 이겁니다. 신춘문예는 노트북 하나, 아니 그것도 없을 때는 펜 하나만으로 가능한 예술이니까.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드는 감독 중에 일본의 니시카와 미와(45)가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직전 해에 칸 그랑프리를 받았던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감독 제자이자 후배죠. 영화 '유레루'를 만든 여성 감독인데, 오히려 그의 산문집 '고독한 직업' '료칸에서 바닷소리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로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료칸에서…'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소설로 쓰면 0엔, 영화로 하면 수백만엔."

가령 이런 문장을 썼다고 합시다. "가게에는 롤링스톤스의 '점핑 잭 플래시'가 흐르고 있었다."

소설 문장이라면 0원입니다. 돈 들 이유가 없죠. 백지 위에 내키는 대로 쓰면 되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다릅니다. 롤링스톤스 노래를 사용했으니 삽입곡 저작권료가 있고, 이 분위기에 맞는 가게의 세트도 지어야죠. 그러니 시나리오 작가는 한 줄 쓸 때마다 제작비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니시카와 미와는 이제 비유로 고백합니다. "내게 영화는 평생을 약속한 아내 같은 존재지만 아내를 상대로 판타지를 자제하지 않는 남자는 없듯, 나도 온갖 욕망을 억누르며 결혼 10주년을 맞이했다. 내내 참기만 하는 남편이었다."

피식 웃습니다. 영화에게는, 아니 아내에게는 언감생심 말도 못 붙여본 판타지를, 소설이라는 애인에게 욕망하는 아이러니. 물론 반대의 좌절도 있습니다. 막상 맞붙어보니 아내의 상냥함이 가슴에 사무칠 때도 허다했다고 하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은 돈보다 상상력과 문장의 재능이 지배하는 장르니까요.

한국에도 양쪽 장르를 가로지른 작가가 드물지 않습니다. 우선 떠오르는 이는 '고래'의 소설가 천명관. 이 작품으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기 전에는 시나리오 작가였고, 지금도 영화 제작의 꿈을 내려놓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천명관의 소설론과 영화론은 별도의 지면이 필요하겠군요.

'아무튼, 주말'은 2주 동안 쉬고 8월 10일자로 다시 돌아옵니다. 부디 애인 같은 소설과 영화로 더위 식히는 명랑한 여름 되시기를.

[어수웅·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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