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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기자의 시각] 축구협회의 신뢰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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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올해 2월 1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거취 관련 발표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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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황선홍 U23(23세 이하) 감독이 A대표팀 사령탑을 맡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반대가 거셌다. 작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고, 올해 U23 아시안컵 조별 리그에서 3연승을 달리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황 감독이 대회 8강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에 지면서 없는 이야기가 됐다. “신태용이 한국 축구를 구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많은 사람이 A대표팀 감독을 무조건 외국인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23위까지 올라왔다. 50위 언저리에 머물렀던 과거와는 다르다. 인재가 없지도 않다. 지난 시즌 울산 HD를 리그 2연패(連覇)로 이끈 홍명보 감독, 전술의 귀재라는 이정효 광주 FC 감독도 있다. 최소 재능으로 최대 성적을 뽑아낸다는 김기동 FC서울 감독도 유능한 사령탑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외국인 감독을 뽑자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행정이다. 후진적 행정이 대표팀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정몽규 회장이 3선에 성공한 2021년 이후 여러 헛발질을 해왔다. 지난해 4월 축구협회는 승부 조작범들을 사면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후폭풍을 맞았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밀실에서 선임했다가 1년 만에 자르면서 또다시 비판받았다.

협회의 불통 행정에 반기를 든 이들은 전부 야인이 됐다. 지금은 말레이시아 감독을 맡고 있는 김판곤 전 전력강화위원장이 대표적이다. 만약 지금 국내파 감독이 선임된다면 ‘코드 인사’일 확률이 높다. 설령 소신파가 뽑히더라도 국내 인연들이 얽힌 탓에 협회의 간섭을 차단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협회와 무관한 외국인 감독이 낫다는 얘기다. 클린스만 감독은 실패하긴 했지만 최소한 협회에서 자유롭긴 했다.

자정이 안 된다면 외부 개입은 어려울까. 대한축구협회는 사단법인이다. 직제상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 단체이기 때문에 국정감사에 불려 나오지도 않는다. 대한체육회가 축구협회를 따로 징계를 내리거나 한 적은 없다. 건드리기엔 축구협회의 몸집이 너무 버겁다. 축구협회는 올해 스포츠토토 지원금 225억원과 국민체육진흥기금 108억원 등 333억원 정도를 국고에서 받는다. 그럼에도 전혀 견제받지 않는다.

맥락 없이 나오는 ‘정몽규 아웃’. 요즘 유행하는 축구 관련 밈(meme) 중 하나다. 협회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추락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협회 안에선 이번엔 국내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겨 제대로 키워보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전에 협회가 스스로 국민적 신뢰를 되찾는 게 우선순위다. 한국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맡는다고 해서 반대할 한국 사람은 없다. 협회가 제대로 기능한다는 보장만 있다면 모두가 반길 것이다.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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