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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사설] "한국 규제 개혁에 영국도 놀라더라"는 부총리, 어느 나라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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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가 '규제를 풀어 달라'는 취지로 연 행사에서 경제부총리가 정부의 규제 개혁이 영국보다 앞선 것처럼 자화자찬했다. "영국 재무장관을 만나 (한국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설명했더니 놀라더라"고 했다. 영국이 원조 격인 '규제 샌드박스'는 신규 비즈니스에 대해 관련 규제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주는 제도다. "규제가 발목을 옭아매고 있다"며 대책을 호소하는 기업인들 앞에서 영국보다 더 규제를 적극적으로 풀고 있는 것처럼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규제의 당사자인 기업들 평가는 다르다. 엊그제 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데이터 경제' 간담회에서도 "규제 혁신이 (정쟁의) 볼모로 잡혀 있다" "밤에 잠이 안 온다. 눈앞이 캄캄하다"며 과도한 규제를 성토하는 핀테크(기술 활용 금융) 기업인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의 대표 사례로 꼽아온 핀테크 산업은 신용정보법, 금산 분리 등의 규제에 막혀 인터넷 은행이 한 곳만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 만큼 지지부진하다. 중국·일본 등에도 한참 뒤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조업 시대의 우등생이던 한국은 미래 먹거리인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선 규제의 덫에 걸려 열등국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이익단체나 시민단체 반대가 나왔다 하면 정부가 규제 혁신을 포기해버리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도 하는 차량 공유 서비스도 택시업계 반발과 그에 영합한 정부 포퓰리즘에 막혀 결국 규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선진국들이 총력전을 벌이는 인공지능·빅데이터·자율주행·헬스케어 등의 신산업이 한국에선 죄다 규제 벽 앞에 멈춰 서 있다. 규제를 풀기는커녕 도리어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무제를 비롯한 무리한 노동 규제를 도입하고, 툭하면 공장을 멈추게 하는 안전·환경 관련 규제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OECD도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해 "경제활동에 부담을 주는 규제를 줄이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규제 개혁을 책임지고 추진해야 할 경제부총리는 "영국이 놀라더라"고 한다. 영국에서 전해 들으면 정말 놀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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