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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대기업 나와 스타트업 6년째…돈 못 벌었지만 돌아가도 또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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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스타트업 세계에 뛰어든 사람들

최근 3~4년 사이 스타트업 바람

대기업 지원 늘고, 정부도 앞장

벤처 3만곳 넘어…투자액 사상 최대

‘제2 벤처 붐 오나’ 기대감

창업 준비자 20~40대로 다양

대학생부터 대기업 퇴사자까지

“취업 어려워 창업하는 것 아냐”

“워라밸 무너졌지만 의미있는 경험”

“창업 쉬워진 만큼 실패도 많아져

말리는 것도 지원기관이 할 일”

개인이 안아야 할 비용 너무 커

실패 감수할 안전망 필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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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사무실에서 창업해 수조원대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하는 신화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꿈이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유니콘 기업’으로 불리는 성공 사례가 늘어나고, 정부도 ‘제2의 벤처 붐 확산’을 정책목표로 내세우면서 스타트업 창업이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 물론 소수의 성공 신화 옆에는 무수한 실패가 존재한다. 최근 스타트업 창업 열기가 뜨거워진 현장을 둘러봤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역 근처 서울산업진흥원 산하 서울창업허브 건물 10층 대강당에서는 신용보증기금 주최 ‘4.0 창업 경진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대회에는 창업을 준비하거나 갓 창업한 166개 팀이 응모해 최종 선발된 12개 팀이 참가했다. 이들은 6분 동안 자신들의 기술과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4분간 질의를 받았다. 심사위원과 관객들의 평가로 우승팀이 가려진다. 관객석에는 150여명이 앉아 있었는데 주로 청년층이었다.

참가팀들의 아이디어는 다양했다. 3차원 프린터를 이용해 환자 맞춤형 틀니를 제작하겠다, 실내에서 자율주행하는 로봇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간편화해 개발했다, 외식업자들을 위해 식자재의 견적을 역경매 방식으로 주문하게 해준다, 가구나 가전제품의 문을 열지 않고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투시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했다 등. 공학박사, 대학원 박사과정생 등 참가자 구성도 다채로웠다.

이날 경진대회 대상은 ‘4차 산업혁명’ 부문에서는 투시 디스플레이 기술을 선보인 업체에, ‘공공데이터’ 부문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 점자문서를 개발한 업체에 돌아갔다. 투시 디스플레이 기술로 대상을 받은 오재환(43) 인투시 대표는 “대기업에서 10년간 연구개발을 하다가 퇴직해 지난해 10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며 “많은 사람 앞에 서니 떨렸는데 좋은 결과를 얻어 기쁘다. 이번 수상이 앞으로 투자를 받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술에 기반을 둔 신생 기업, 즉 ‘스타트업’(벤처기업)들의 창업 관련 행사들이 ‘제2의 벤처 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정부가 인증한 벤처기업은 최근 몇년 사이 빠르게 늘어나 3만6천여곳에 이르렀다. 이들은 무엇을 꿈꾸며 치열한 스타트업 창업 현장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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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팀 지난해 424개→올해 681개” 서울창업허브 대강당 대관을 담당하는 운영팀 관계자는 “창업 사례를 발표하고 겨루는 ‘경진대회’나 ‘창업리그’, 우수 창업 사례를 발표하는 ‘데모데이’ 같은 행사를 위한 대관 신청이 많다”고 말했다. 신용보증기금 대회 이틀 뒤인 지난달 27일에는 ‘진로하이트 청년창업리그’ 결선대회가 열렸다. 건물 곳곳에는 오는 9월 열리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주최 ‘2019 소셜벤처 경연대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국내 최대 창업경진대회로 꼽히는 중소벤처기업부 주최 ‘도전! 케이-스타트업 경진대회’도 오는 11월 예정돼 있다. 이 대회는 다음달까지 수천개 팀이 참가하는 지역예선과 9월 이후 152개 팀의 본선 경연을 거쳐 11월 왕중왕전이 열린다.

지난달 27일 저녁 7시께 서울 강남구 선정릉 앞에 있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창업지원센터 ‘디캠프’ 6층 다목적홀에서는 ‘디-데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 행사는 디캠프가 매달 선정한 신생 스타트업들이 창업 사례를 발표하고 투자를 받을 기회를 얻는 경연대회다. 이날 참가한 5개 팀은 5분씩 발표를 한 뒤 벤처투자자 등 심사위원들의 질의를 받았다. 디캠프 운영팀 직원은 “이 무대에 서는 스타트업은 보통 15~20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검증된 기업들이라 업계에서 주목을 받는다. 이곳에 나오려고 4수, 5수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간 창업지원기관인 아산나눔재단의 ‘마루180’은 해마다 여는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를 한창 준비 중이었다. 김형진 센터장은 “지난해 424개 팀이 지원해 예선을 치렀는데 올해는 681개로 크게 늘었다”며 “스타트업 창업 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예선을 통과한 16개 팀은 9주 동안 사업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달 21일에 열리는 결선 경연대회에서 실력을 겨룬다.

2010년대 창업 생태계 성장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벤처 열풍과 거품 붕괴 이후에 벤처 창업이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지만, 2010년 이후엔 창업 생태계가 많이 성장했다. 2009년 서울시의 ‘청년창업 1000 프로젝트’가 추진된 데 이어 2011년부터 중소기업청이 전국에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세우면서 창업지원 정책이 활성화했다. 이후 대기업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 2013년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디캠프가 생겼고 2014년 현대 아산나눔재단의 마루180이 만들어졌다.”(이태훈 서울창업허브 센터장)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 등장, ‘4차 산업혁명’ 가속화 등 정보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는 인프라와 기회가 한층 풍부해졌다. 창업 정보 제공, 실무교육, 임대료 지원, 대출보증 등 정부의 창업지원 프로그램도 생태계 성장에 도움이 됐다.

최근 창업 생태계의 특징으로는 대기업의 참여와 지원이 활발해진 점이 눈에 띈다. 삼성, 현대자동차, 엘지, 한화, 롯데 등 많은 대기업이 사내 벤처를 육성하거나 청년 스타트업 지원·투자 사업에 참여한다.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민관협력네트워크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임정욱 센터장은 대기업의 스타트업 지원에 대해 “비즈니스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기존의 대기업 비즈니스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빠른 변화에 대응하는 데에 자체 역량만으로 어렵고, 작지만 강한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의 혁신을 이루는 데 필요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홍일 디캠프 센터장도 “대기업들의 청년 창업 지원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혁신적인 스타트업의 기술과 서비스를 끌어들여 자기 혁신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기관들의 벤처기업 투자도 크게 늘고 있다. 국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18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신규 벤처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1조6327억원)보다 16.3% 증가한 1조8996억원이었다. 이는 지난해에 이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것이다. 지난해 1년간 신규투자 총액은 3조4249억원이었다. 임정욱 센터장은 “통계에 잡히지 않은 투자까지 합하면 4조원대에 이를 것”이라며 “4~5년 전 2조원 규모에 비해 거의 2배나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엔젤투자(개인투자자들이 돈을 모아 투자하는 것)도 늘어나는 추세다. 고영하 엔젤투자협회장은 “벤처 거품 붕괴 이후에 엔젤투자가 크게 위축돼 2012년 스타트업에 대한 엔젤투자 규모는 500억원도 안 됐다. 하지만 다시 크게 늘어나 지난해엔 5천억원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스타트업계에 뛰어든 사람들의 꿈 중 하나는 ‘유니콘’이다. 비상장 기업인데도 기업 가치가 1조원을 넘어선 스타트업을 가리키는 별칭이다. 전세계 유니콘 목록을 발표하는 미국 시장조사기관 ‘시비(CB)인사이트’의 웹사이트를 보면, 현재 한국에선 쿠팡, 크래프톤(옛 블루홀), 옐로모바일,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엘앤피코스메틱, 위메프, 지피클럽,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야놀자 등 9곳이 ‘글로벌 유니콘’ 목록에 올라 있다. 전세계 유니콘은 360여곳이지만 미국과 중국 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터라, 한국 기업 9곳은 상당한 성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변화 탓에 일각에선 ‘제2 벤처 붐’이 일고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정부 역시 지난 3월 ‘제2 벤처 붐’을 정책 목표로 내세우고 각종 지원책을 발표했다. 임정욱 센터장은 “제2의 벤처 붐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다. 실제로 상당한 실력을 갖춘 우수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났고 투자 규모도 훨씬 커지고 있다”며 “지난 4년간 언론에 공개된 사례를 집계해보면, 6월 말 현재 10억원 이상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만 530여곳(2015년엔 80여곳)이고 100억원 이상 투자받은 곳이 150곳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기술과 서비스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대세를 이루는 것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온라인을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직접 사업을 하는 비투시(B2C)나,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을 연결하는 각종 서비스인 오투오(O2O) 사업이다. 이에 더해 인공지능, 빅데이터, 건강의료, 문화생활 분야 사업들도 주요한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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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세계, 피 말리지만

스타트업의 세계에 뛰어든 사람은 대학생부터 회사를 다니다 퇴직한 사람까지,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하다.

지난달 25일 서울창업허브 1·2층에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에는 100명 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창업지원센터들이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열린 공간이다. 노트북을 켜고 프로그램을 짜거나 문서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옆자리 동료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두세 사람씩 모여 탁자 위에 설계도면을 펼쳐놓고 토론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한쪽 구석에서 청년 둘이 칠판에다 아이디어를 써 내려가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는 선후배 사이라고 소개한 이아무개(32·산업공학 전공)씨와 또 다른 이아무개(29·컴퓨터공학 전공)씨였다. 두 사람은 다른 회사에 다니다가 석달 전쯤 함께 퇴사했다. 한달 전부터 이곳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꼭 한번은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게 창업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1년 동안은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퇴사했죠. 지금 나이가 아니면 할 수 없겠다 생각했고요.” 이들은 “특히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는 1인 개발과 창업이 가능한 시대가 됐기 때문에 20~30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사이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분위기가 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퇴사하고 나니 걱정도 커졌다고 한다. “더 치열해져야 할 거 같아요. 회사 안에선 정해진 직무에만 충실하면 됐는데 지금은 스스로 수익성, 마케팅, 이런저런 거 다 따져가며 또 프로그래밍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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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일찍 창업하는 이들은 대학생이다. 상당수 대학이 창업보육센터와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창업 관련 강의나 학점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지난 2일 창업 관련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진 연세대학교 캠퍼스를 찾았다. 5명이 한 팀을 이뤄 ‘대학생을 위한 맞춤정보 서비스’ 업체 창업을 준비 중이라는 김신우(27·체육교육학)씨는 “취업하기가 어려워 창업을 생각하는 건 아니다. 진심으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비전을 갖고서 창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3~4년 전과 비교하면 창업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두배 이상 늘어난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는 연세대 창업지원단 사무실에서 만난 박소영 팀장(창업매니저)은 “해마다 학생 창업팀 50개를 선정해 지원한다. 창업 관련 정규 강의들을 제공하고 창업 휴학을 허용하는 한편 올해부터는 창업 대체 학점제도 신설했다”며 “창업을 낯설거나 부정적으로 보던 학생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창업은 낭만이 아니다. 골목상권에서 경쟁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의 세계도 힘겹지만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스타트업 현장도 피를 말린다.

지난달 25일 찾은, 서울창업허브에 입주해 있는 정보통신 스타트업 아이비베리의 사무실 현장도 그랬다. 개발자들의 책상에는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박용덕(47) 대표는 “경진대회에서 수상도 했고 상도 꽤 받았지만, 사업은 성적순이 아니었다.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이제 겨우 다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에서 나와 6년차 스타트업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알고 지내던 창업 동기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연락도 끊겼어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그렇듯이 스타트업 10곳 중 1곳만 살아남는 게 사실 당연하죠. 본래 리스크(위험)가 큰 게 스타트업이니까요. 우리도 2016년 말에 사실상 기존 사업이 망해 폐업할지를 두고 가부를 결정해야 했어요. 다시 해보자고 뭉쳐서 2017년 하반기부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이 업체는 오프라인 매장의 결제 업무를 통합하고 간편화해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스타트업 생활에는 만족하고 있을까? “30대 중반부터 창업을 꿈꿔왔고 40대 초반에 창업했죠.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때 빚도 많았고 돈도 크게 못 벌었어요. 이젠 성공하고 싶어요. 세상에 뭔가 의미 있는 일 하나는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또 하겠느냐 물었다. “글쎄요, 아마 또 할 거 같아요. 안정적이지 않지만 늘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리고 변화해가는 게 재미있으니까요.”

‘온라인 독서실’이라는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구루미’의 이랑혁(44) 대표는 “창업은 인내이고 기다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퇴사 뒤 2015년 9월 창업했다. 본래 눈여겨둔 사업 분야는 화상회의와 화상교육 시스템 개발이었다. 하지만 기회는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부가적인 서비스로 사용자들이 웹캠을 함께 쓸 수 있도록 했는데, 사용자들이 웹캠 서비스를 ‘함께하는 온라인 독서실’이라는 용도로 쓰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자신의 영상을 서로서로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공부를 하는 사용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구루미는 출석 확인 등 필요한 기능들을 제공했다. 사용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어느덧 회원으로 등록한 사용자가 40만명을 넘었고, 이제는 이 업체의 주요 서비스가 됐다. 이랑혁 대표는 “창업은 일단 시작하면 오로지 회사만 바라보고 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창업가 정신’이 도전, 혁신 등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인내와 지구력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며 기회를 기다리는 것도 스타트업에서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의 건강 상태를 오줌 검사로 간편하게 알려주는 스타트업 핏펫의 고정욱(32) 대표도 대기업의 프로그램 개발자 출신이다. 2016년 퇴사해 2017년 창업했다. “오랫동안 부은 적금을 깨고 자본금을 마련했죠. 다행인 건 창업을 위한 여러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고, 다행히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창업 초반에 사무실 임대나 인력 채용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그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안이나 걱정보다도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을 들었다. “가장 바빴을 때는 주 100~120시간이나 일했어요. 친하던 친구들도 보기 어려워 외로운 시간이었죠. 한때 몸에 건강 이상신호까지 생기면서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요.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창업은 성장통과 같다”고 말했다. “사업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성장해 있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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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큰 실패비용

스타트업들 중에선 ‘유니콘’의 성공 신화도 나오지만, 좌절을 경험하는 창업자가 더 많다. 한 창업지원센터 관계자는 “창업자들이 너무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나는 감히 창업을 하지 못할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로 창업의 고충을 나눌 수 있도록 정신과 상담 프로그램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쉽게 뛰어든 창업은 그만큼 실패활 확률도 높아진다. 이태훈 서울창업허브 센터장은 “창업지원 프로그램이 많아지다 보니 쉽게 창업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며 “창업 계획을 전문적으로 검토해주고, 말려야 할 때는 말리는 것도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창업지원 공공기관이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홍일 센터장은 “실패 이후에 창업자 개인이 안아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이 창업 생태계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창업 준비 단계나 초기 단계에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창업하기는 예전에 비해 좋아진 환경이다. 하지만 창업에서 3년까지 기간에 잠재력 있는 많은 스타트업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 투자 자금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짚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도 필요하다. 고영하 엔젤투자협회장은 “우리 경제구조를 튼튼하게 하려면 좋은 기업이 많아져야 하고, 신생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교육 개혁, 좋은 기업으로 투자금이 흘러가게 하는 금융 개혁, 실패 뒤에도 기본 생활을 뒷받침해주는 사회안전망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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