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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아버지는 내게 영원한 신화”…최인훈 작가의 딸이 부르는 망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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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씨 회고록 ‘회색인의 자장가’ 출간…1주기 맞아 23일 ‘추모의 밤’

경향신문

최인훈 중단편선 <달과 소년병>(왼쪽)과 회고록 <회색인의 자장가>.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1936~2018)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됐다.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인 고인의 딸은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는 담담히 말한다. “나는 복잡한 유년을 보냈다.”

23일로 1주기를 맞는 작가 최인훈의 딸 최윤경씨가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 <회색인의 자장가>(삼인)를 펴냈다. 대작가가 이룬 성취의 거대한 그늘 아래서 성장했던 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기자기한 추억과 더불어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을까 두렵고 위축됐던 성장기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글 쓰는 일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일만 하고 싶었다”던 딸이 쓴 첫 책은 결국 아버지에 관한 책이 됐다.

‘위대한 작가’ 최인훈은 어떤 아버지였을까. 바깥출입을 기피하고 읽고 쓰기에만 몰입해 딸의 졸업식엔 한 번도 온 적이 없었고, 유치하단 이유로 TV프로그램 <뽀뽀뽀> 시청을 금하고 식탁에서도 유토피아를 논했다.

하지만 동시에 따스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타령조로 서툴게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불러주는가 하면, 딸의 손을 잡고 이태준 생가 등을 다니며 문학의 자양분을 심어주려 했다. “소녀여, 야망을 가져라(Girls, be ambitious)”라며 딸에게 결혼과 아이 양육으로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손녀에겐 그저 ‘바보 할아버지’였다. “무방비한, 사랑만인 표정”으로 손녀를 대하고, 손녀 앞에서 손을 들고 벌을 서기도 했다.

경향신문

어린 시절 최윤경이 아버지 최인훈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삼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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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최인훈의 인간적 면모를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의 그늘에서 그를 미워하고 사랑했던 ‘인간 최윤경’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정갈하게 쌓인 눈을 치우는 걸 싫어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기로 아버지가 눈을 뜨기 전 마당에서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던 딸, 성적이 떨어지자 선생님으로부터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거야”란 말을 듣고 “아버지의 인생에서 큰 사건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던 딸.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갑자기 “이겼다. 나는 아버지를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살아서 이걸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이 너무 무섭고 죄스럽고 내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인훈은 “신화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깊게 살아갈 때 그 인생을 부르는 이름”이라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딸은 말한다. “아버지는 내게 영원한 신화이다. 극복하고 싶으면서 간직하고 싶은 신화이다.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책엔 <호밀밭의 파수꾼> <더블린 사람들> 등 최인훈의 추천 도서와 그에 얽힌 사연도 함께 실렸다. 최인훈은 제일 좋은 책으로 <좁은 문>을 꼽으며 말한다.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건가. 그게 제일, 괴롭지.”

최인훈 1주기를 맞아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다리소극장에서 ‘작가 최인훈 1주기 추모의 밤’ 행사도 열린다. 연극배우 박정자, 문학평론가 김병익, 김호기 연세대 교수 등이 참여해 작품을 낭독하고 고인에 대한 추억을 나눈다. 문학과지성사에선 1주기에 맞춰 최인훈 중단편선 <달과 소년병>을 출간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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