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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핵실험 60년 마셜제도···“후쿠시마보다 최대 1000배 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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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구진 “후쿠시마보다 최대 1000배 방사능” 발표

11개 섬에서 세슘137 등 발견돼 여전히 생물이 살기 어려운 환경

방사성폐기물 성분도…해수면 올라가면 바다 오염 가능성 제기

경향신문

1954년 3월1일 남태평양 비키니섬 핵실험장에서 미국 최초의 수소폭탄 ‘캐슬 브라보(Castle Bravo)’가 폭발하는 모습. 히로시마 원폭의 1000배 위력이었다. 미국 연방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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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게 켠 전구를 씌운 듯한 전등갓 모양의 구름이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떠오른다. 자연계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이 구름은 핵폭발로 인한 급격한 열과 압력의 변화가 만든 것으로, 1954년 3월1일 실행된 미국 최초의 수소폭탄 ‘캐슬 브라보(Castle Bravo)’의 폭발 순간이다. 캐슬 브라보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000배에 달했다.

이 엄청난 위력의 수소폭탄이 터진 곳은 비키니섬으로, 태평양 마셜 제도의 일부이다. 호주와 하와이 중간에 있는 마셜 제도는 29개의 환초가 촘촘히 모여 구성돼 있다. 현재는 독립된 주권을 유지한 채 미국의 정치·경제적 지원을 받는 자유연합의 일원이지만 실험 당시엔 미국 영토였다. 마셜 제도에서는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모두 67차례 핵실험이 있었다. 1992년까지 미국이 실행한 핵실험 1054건의 6%에 해당한다. 횟수가 비교적 적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마셜 제도에서 터진 핵폭탄들의 위력이었다.

미국의 핵실험에서 발생한 에너지양의 절반 이상이 마셜 제도에 집중됐다. 캐슬 브라보를 비롯한 초강력 핵무기들의 집합소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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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마셜 제도의 비키니섬 전경. 최근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다수의 핵실험이 있었던 이 섬이 무인도로 남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유네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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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셜 제도는 어떤 상황일까. 마지막 핵폭탄이 터진 지 60년이 지났으니 이젠 생물이 살 만한 곳이 됐을까. 최근 마셜 제도를 직접 발로 뛰며 확인한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CNN과 LA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연구진은 지난주 국제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를 통해 마셜 제도 각지에서 채취한 토양 샘플을 분석한 결과, 모두 11개 섬에서 아메리슘241과 세슘137 같은 방사성물질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가운데에는 대표적인 핵 재난 지역으로 지목되는 구소련의 체르노빌이나 일본의 후쿠시마보다 10배에서 최대 1000배까지 많은 방사능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초대형 수소폭탄 캐슬 브라보가 헤집어놓은 비키니섬은 앞으로도 무인도로 남겨놓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비키니섬은 핵실험이 시작된 1946년에 주민들이 집단 이주했으며 1960년대 말 미국 정부가 “안전하다”는 선언을 한 뒤 일부 사람들이 재정착했지만 곧 높은 방사능 수치 때문에 다시 이주해야 했다.

마셜 제도 일부 섬의 토양에서 나타나는 방사성물질은 그대로 식물에도 영향을 끼쳤다. 연구팀은 마셜 제도의 일부를 이루는 비키니와 나엔, 론게라프섬에서 자라는 과일이 오염돼 있다고 보고했다. 조사 대상 3개 섬 모두에서 미국보다 식품 방사능 섭취 규정이 엄격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라면 먹어서는 안될 과일이 발견됐고, 비키니와 나엔의 몇몇 지역에선 비교적 느슨한 미국 기준을 상회하는 과일도 나왔다고 LA타임스는 보도했다.

특히 연구진이 마셜 제도의 일부인 나엔섬에서 플루토늄238을 검출한 것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에 속한 컬럼비아대 이바나 휴즈 교수는 “플루토늄238은 낙진이 아닌 방사성폐기물 성분”이라고 지적했다. 이 섬에 보고되지 않은 방사성폐기물 매립지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셜 제도에선 현재 7만5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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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섬들에서 발견된 방사성물질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해수로 녹아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지금까지 태평양 지역에서 해수면 상승은 특정 국가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문제로 인식돼왔지만 완전히 다른 양상의 문제가 생기는 셈이다. 실제 이런 일이 현실화한다면 오염의 범위와 확산 양상이 달라진다. 방사선 피폭은 암과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장기적인 건강 이상을 유발하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도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마셜 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재점화시킬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마셜 제도에 심각한 방사능 위협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게 미국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컬럼비아대 연구팀의 조사 결과가 나오자 과학계 일각에선 지면에서 너무 낮은 위치에서 방사성 수치를 측정했거나 현장에서 채취한 실험 재료가 오염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냉전 시기, 태평양의 환초에서 벌어진 대규모 핵실험이 해당 지역 주민은 물론 인류의 걱정거리로 떠오른 만큼 정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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