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아시아초대석]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자사고 유지 바라는 학부모 마음 이해
대학·사회개혁 진전 안되면 고교체제 바꾸더라도 왜곡효과 우려
자사고·일반고 분리 교육 필요 없어 … 교육청·학교 노력 절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17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서열화된 고교체제를 개혁하기 위해선 대학 개혁, 사회 개혁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로 인한 혼란과 부작용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고교서열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특수목적고와 자사고, 일반고 등으로 나뉜 고교체제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재차 피력했다. 그는 지난 17일 일반고 종합지원 계획을 담은 '일반고 전성시대 2.0'을 발표한 뒤 서울교육청 교육감실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나 "일반고 붕괴 원인이 비단 자사고 때문만은 아니고, 자사고를 없앤다고 공교육이 정상화된다고 단언할 순 없다"면서도 "유독 교육 평등주의적 기대가 높은 학부모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선 일반고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 교육환경에 '다양성' 확보를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는 평가도 내놓으며 이를 자사고의 정책적 유효기간 만료 근거로 제시했다. 조 교육감은 "초ㆍ중등교육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서열화된 대학체제를 개혁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며 "동시에 일반고의 교육과정을 다양화해 그동안 자사고에서만 기대할 수 있던 교육적 성과를 일반고에서 구현해 낼 것"이라고 확언했다. 자사고 폐지가 공교육 정상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으려면 모든 교육 주체들이 뜻을 모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당부도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담=신범수 사회부장
정리=조인경 기자 ikjo@
- 자사고와 학부모 반대가 여전히 거세다.
▲ 자녀가 자사고에 다니는 학부모들이 자사고 지위 유지를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일반고가 상대적으로 황폐화돼 있다는 비판이 있는 상황에서 자녀에게 최선의 선택을 해주려 한 결정에 대해 그 자체로 존중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교육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자사고 학부모들도 이런 점은 마음 속으로 존중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 자사고가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말의 정확한 뜻은 무언가?
▲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단행했던 고교평준화의 큰 흐름 속에서 다양한 교육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이후 분화된, 다양한 학교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자사고 설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자사고 설립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보면, 2015 교육과정이 적용되고 있고, 고교학점제도 2025년 도입을 목표로 2022년부터는 부분 시행될 예정인 데다 서울에서는 학생이 교육과정 일부를 선택하게 하는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제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일반고에서도 충족하고 실현할 수 있게 됐다고 보는 것이다.
학생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수월성 교육을 위한 과목 선택도 가능해졌고 심지어 수준별 수업도 가능하다. 굳이 자사고-일반고 분리 형태가 아니여도, 일반고의 교육 과정 다양화 속에서 자사고를 통해서 구현하고자 했던 교육적 효과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다.
- 조 교육감이 지향하는 목표는 결국 대학이나 전체 사회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들로 보인다.
▲ 서열화된 고교체제가 유지되고 재생산돼 온 건 서열화된 대학체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서열화된 대학의 배후에는 훨씬 불평등하고 서열화된 사회경제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서열화된 고교체제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결국 대학 개혁, 사회 개혁과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교서열화를 해소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은 인정한다. 대학개혁과 사회개혁이 충분히 진전되지 않고선 고교체제를 개혁 하더라도 풍선효과나 왜곡효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즉 이상적인 교육정책을 만든다 해도, 이런 서열화된 대학체제, 불평등한 사회현실을 바꾸지 못하면 기대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말이다.
현재 대학입시라는 건 사회ㆍ경제적 생존투쟁에 가깝다. 시장 논리로 따져봐도 사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해서 소위 일류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면 이른바 '학벌자본'을 획득할 수 있다. 이것을 평생 가져갈 수 있는 투자가치가 있는 선택인 것이다. 이런 현실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제 권한이 아닌데도 대학체제 개혁, 대학서열화 완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교육부가 적극 나서주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 '이 자사고는 우수하니 필요하고 저 자사고는 그렇지 않다'는 평가를 하면서, 또 한 편으론 '자사고 전면 폐지'를 외친다. 좀 이상하지 않나.
▲ 우리 학부모, 국민은 매우 높은 수준의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고 있고, 그 중에서도 교육 평등주의적 기대가 높다. 비싼 등록금을 내는 '일류 고등학교'도 국민들이 수용하면 아무 문제 없지만, 현재 다수의 학부모나 교사, 학생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본다. 사실 자사고 개수가 이렇게 많지 않고 특수목적고나 외국어고 정도까지만 있었어도, 그들이 고교 생태계를 크게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국민도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 자사고가 25개나 있다보니 마치 서울 고등학교를 우열반으로 나눠놓은 상황이 돼 버렸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ㆍ외고 폐지 정책도 처음엔 일반고로의 단계적 전환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선을 거치는 과정에서 정치쟁점화되면서 맥락이 조금 바뀌었고, 지금은 자사고ㆍ외고 폐지가 마치 패키지 정책처럼 묶여져 버린 측면이 있다.
- 조 교육감도 수월성 교육기관도 있어야 한다는 건 인정한다. 그렇다면 정말 우수하고 지정목적에 맞게 운영되는 일부 자사고는 남겨두는 게 맞지 않나?
▲ 평가를 통과한 자사고와 과학고, 외고들이 소위 일류 고등학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번 평가 이후에 이 같이 새롭게 떠오를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를 두고 국민의 의견을 모아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과학고의 경우 이미 국제 수학ㆍ과학올림피아드에서 1등하는 학생들이 있을 만큼 자랑스러운 성과를 내고 있는데, 입시 사교육을 촉발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발 방향이나 시험을 운영하고, 의대 진학을 위한 통로가 되지 않도록 하는 보완 조치는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외고는 조금 성격이 달라서, 이제는 영어나 중국어의 경우 집중적으로 외국어 교육을 시켜 국제언어인재를 양성한다는 필요성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 강남 8학군으로의 쏠림현상 우려는 어떻게 보나.
▲ 일부 강남 지역 학부모나 사교육업계에선 수능이 공정하다는 취지로 자꾸 수능 전형 비중을 늘리자고 하지만, 교육계 큰 흐름에선 볼 때는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능 중심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수능은 이미 27년간 유지돼 오면서 '문제은행화' 됐고, 이에 따라 사교육이 개입할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이제 강남에선 재수를 하거나 3분의 1 가능성 밖에 없는 수능을 통해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학부모들이 오히려 더 잘 판단하실 것으로 본다. 그래서 강남 지역으로 이사를 하거나 전학을 하는 8학군 부활이라든가, 강남쏠림 현상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본다.
- 자사고나 외고 등 폐지 후, 일반고 교육의 질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 그동안 자사고가 학생들을 우선 선점하는 효과를 누리고, 학부모들은 더 비싼 등록금을 부담하고서라도 자사고를 선호하면서 일반고가 황폐화됐다는 표현까지 등장했었다. 이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고, 일반고로 전환된 자사고들이 연합형 교육과정을 공유하는 시스템 속에서 거점 일반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후 일반고가 상향평준화될 것이냐 혹은 하향평준화될 것이냐는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 교장선생님들의 열정ㆍ노력에 달린 것이다. 학부모들이 기대하는 좋은 학교는 행정으로만 만들어질 수 없다.
교육청이 최대한 지원하고 학교 내부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또 한가지, 지금은 자사고를 비롯해 선호 고등학교가 공립이 아니라 사립으로 쏠리는 현상이 있고, 공립은 상대적으로 우수하지 않은 학교처럼 비춰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그 점에서는 교육청의 역할도 중요하고, 일선 교사들도 책임성을 가지고 함께 노력을 해야 한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