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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기고]한·일관계 해결의 시작점은 ‘식민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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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일관계가 위기에 빠지고 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로 인해 1965년 맺은 한일협정체제가 위협을 받자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로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가하려고 한다.

경향신문

1965년 맺은 한일협정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 주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았던 것에 대해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았다. 그저 해방 이전에 있었던 한·일 양국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선언한 것뿐이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인 일본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화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상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1965년의 한일협정이 식민지 문제에 대해 회피했기 때문에 대법원은 1965년의 한일협정과 식민지 체제하에서 일어난 강제징용 문제를 별도로 판단한 것이다.

한일협정은 일본에 대해 식민지화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체결 당시부터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결국 이 협정은 박정희 독재정부가 계엄령을 내리는 등 국민적 저항을 군사력으로 진압한 가운데 체결되었다. 그러나 1987년 한국의 민주화 이후 국가적 강압은 힘을 잃었다. 이제 한일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한국의 국내적인 지지기반은 거의 없다.

양국 관계는 기본적으로 양자 간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합의’는 지속되기 어렵다. 1965년 한일협정의 한 부분인 어업협정의 경우, 자국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일본 측의 요구에 의해 1998년 개정한 바가 있다. 이처럼 한쪽에서 기존의 조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면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한일협정은 식민지 문제를 공백으로 남겨두었고, 이는 한국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민주화된 현대 한국에서는 독재정권 때처럼 국민의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할 수도 없다. 따라서 식민지 문제에 대해 한·일 간의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에 지속된 일본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 정부는 자신에게 명확한 역사적, 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책임은 양심적인 대다수 일본 국민들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새로운 합의는 일본의 기득권에 대해서도 보장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1965년의 한일협정에서 모든 금전적인 청구권을 해결하기로 한국 정부로부터 약속받았다. 따라서 새로운 합의에 의해 일본 정부가 식민지 책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배상금은 일본 정부가 지출하되 그만큼 한국 정부가 일본에 보충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한국은 가장 원하던 식민지 책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고, 일본 역시 1965년 한일협정이 가져온 정치·경제적 불안정을 해결할 수 있다.

한·일 양국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떼어낼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한·일 양국이 함께 나아가는 미래를 위해서는 일본이 언제든 한국을 침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불안을 해결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계속 새로운 금전 요구가 늘어난다고 염려하는 일본인들의 불안도 해소해야 한다.

한·일관계가 위기에 빠진 지금이 오히려 오랫동안 묵혀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기존의 한일협정체제가 한·일 양국의 우호를 보장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식민지 문제 해결은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한·일 양국은 식민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정종원 |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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