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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테러보다 위험” 뭇매 맞은 리브라, 규제·기술의 ‘벽’ 넘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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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가상통화 발행 놓고 쏟아진 우려…혁명인가, 혼돈인가



경향신문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 하원 은행위원회의 페이스북 가상통화 ‘리브라’ 청문회에서 페이스북 가상통화 책임자인 데이비드 마커스가 발언하고 있다. 그의 머리 위에 ‘만약 소비자가 리브라를 사용한다면, 그들은 누구와 거래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떠 있다. 의원들은 리브라가 테러집단이나 인신매매, 마약매매 등 불법적인 용도로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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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책은 중앙은행만이 통화를 찍어낼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한다. 만약 민간기업이 달러나 유로, 원을 대신하는 통화를 찍어낸다면 국제 통화질서는 흔들린다. 페이스북이 발행하려는 가상통화 ‘리브라(Libra)’를 두고 미국 상·하원과 주요 7개국 재무장관 등이 “국가주권 위협” “자금세탁” 등을 거론하며 엄격한 규제 도입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제2의 인터넷’으로 불리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과 암호화폐의 효용 등을 고려하면, 리브라와 같은 가상통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페이스북이 공언한 대로 커피를 사서 마시듯 월세를 내고, 해외에서 높은 수수료를 내지 않고도 송금하는 시대가 올까. 당장 내년부터 ‘우버’를 타거나 ‘이베이’에서 물건을 살 때 가상통화로 지불하는 건 가능할까.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 공익성, 신뢰성에 대한 우려

미 청문회서 난타…움츠린 페북

“모든 불안 해소 때까지 기다릴 것”

자금세탁 등 우려도 불식시켜야


지난 16·1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각각 열린 미국 상·하원 은행위원회의 리브라 청문회에서 페이스북 측은 일단 바짝 움츠렸다.

페이스북 자회사이자 리브라 운영사인 칼리브라의 데이비드 마커스 대표는 “적절한 규제와 관련한 승인을 모두 받고 모든 우려를 해소할 때까지 (리브라 출시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일단 보류’라는 뜻보다는,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마커스 대표는 리브라 출시 시기에 대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마커스 대표는 “리브라의 주요 시장은 미국 외 국가로 미국 달러화의 지위를 위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달러나 어떤 독립적 통화와도 경쟁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페이스북 측이 수비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마커스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은 피할 수 없으며, 미국이 이를 주도하지 않으면 국가안보기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가상통화에 대한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리브라는 페이스북을 사용할 수 있는 국가에 제한되기 때문에, 현재 리브라협회에 중국 기업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는 “칼리브라(리브라 거래를 위한 전자지갑)를 개설할 때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을 인증할 것”이라며 범죄 악용 우려에 대해 방어했다. 또 “페이스북은 리브라협회에 가입한 28개 업체 중 하나”라며 페이스북이 리브라협회를 독단적으로 운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내년 상반기 100개 업체를 리브라협회에 모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리브라협회가 스위스 제네바에 자리 잡은 이유도 “규제를 피하기 위함이 아니다”라며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 금융기구들이 스위스에 있는 이유와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의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리브라가 9·11테러보다 위험하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페이스북 측도 칼리브라에서 나온 거래 데이터를 수집하는지, 리브라의 가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달러 등 예치자산으로 수익을 얻는 리브라협회를 비영리기구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페이스북이 리브라에 얼마나 투자했는지 등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 리브라 거래 속도도 문제

수십억명 이용자 가진 화폐 ‘꿈’

출시해도 거래 처리 속도 ‘과제’

관련 법 없는 국내 상륙 어려울 듯


리브라는 크게 보면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가상통화다. 하지만 리브라는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주요 통화 가치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또 리브라협회에 참여한 기업들은 리브라를 관리, 감시한다. 제3자 없이 당사자끼리 암호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분산·탈중앙 철학을 가진 기존 블록체인과는 다른 형태다.

리브라 블록체인 플랫폼은 합의 방식으로 비잔틴장애허용 계열 알고리즘을 쓴다. 블록체인은 모든 참여자(Node)가 거래 기록을 볼 수 있게 하고, 그 기록을 많이 퍼뜨려 조작할 가능성을 없앤 기술이다. 일부 참여자가 거래를 조작하더라도 압도적으로 많은 다수가 조작되지 않은 장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식이 비트코인에서 쓰는 ‘작업증명(POW)’ 방식이다. 비잔틴장애허용 방식은 악의적인 참여자가 전체 네트워크의 3분의 1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전한 합의로 간주하는 방식이다. 거래 내역을 검증하는 이들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거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또 ‘무브(Move)’라는 자체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한다. 무브는 금융 데이터를 저장하기에 좋은 방식이다.

페이스북은 리브라가 출시되면 ‘초당 1000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신용카드사 비자(VISA)는 현재 ‘초당 2만4000건’의 거래를 처리한다. 기술적으로 리브라의 거래 속도를 늘리지 못하면 수십억명이 사용한다는 페이스북의 꿈은 그 파급력이 적어진다. 페이스북은 “거래 처리량과 지연속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각 규제당국의 우려와 기술적 장벽을 넘는 것도 페이스북에 놓인 숙제다.

리브라가 출시된다 해도 국내 상륙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국내에도 스테이블 코인 방식인 테라의 ‘테라X’가 있지만, 테라 측은 지난달 당초 목표와는 달리 테라X를 티몬과 배달의민족 등에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법·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도 리브라에 대한 부정적 영향력을 가득 담은 동향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리브라가 규제당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앙은행에 예속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 사무총장이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리브라가 규제를 넘어 독립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지, 아니면 중앙은행 등 기존 체제에 흡수되는 형태로 나타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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