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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기자가만난세상] 양파·마늘값 폭락에 성난 農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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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수확을 마친 전남 무안군 김모씨는 ‘영농계산서’를 뽑아봤다. 김씨는 수년째 1만3860㎡에 양파만 재배하는 전업농이다. 올해 660㎡당 양파 수확량은 200망(망당 20㎏)으로 망당 5000원에 판매해 100만원가량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660㎡당 평균 생산비인 147만원에 훨씬 못 미쳐 47만원의 손해를 봤다. 김씨는 올해 대규모 양파 농사를 지어 987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김씨의 양파 농사는 지난해 10월 종자를 뿌리면서 시작됐다. 지난달 수확까지 8개월간 자식처럼 재배했지만 1000만원에 가까운 빚만 지게 됐다. 단순히 1000만원만 손해 본 게 아니다. 예년 3000만∼4000만원의 수익을 고려하면 손해액은 5000만원대에 이른다. 들판에서 만난 김씨는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지난해에도 양파 농사를 지어 올해만큼 손해를 봤다. 김씨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는 “죽어라 양파 농사만 지었는데 이게 농민의 잘못이냐”고 하소연했다.

세계일보

한현묵 사회2부 기자


남도 들녘에는 밭작물 수확이 한창이다. 양파, 마늘, 고추, 참깨 수확으로 이어진다. 수확의 기쁨은 없고 한숨소리만 가득하다. 남도의 대표 밭작물인 양파와 마늘 가격은 예년의 반토막 수준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양파 가격동향(도매)을 보면 이번 달 양파값은 ㎏당 401원이다. 평년 877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17년 같은 달의 1171원에 비하면 3배가량 하락한 셈이다. 올 들어 양파 가격이 400∼600원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가격이 올라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깐마늘의 ㎏당 도매가격도 4380원으로 평년 6289원의 69% 수준이다. 최근 5년간 올해가 가장 낮다.

양파 가격 폭락은 예년처럼 단순히 재배면적 증가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재배면적은 2만1777㏊로 지난해보다 17.6% 줄었다. 생산량이 10a당 지난해보다 27.2%나 늘어난 게 발목을 잡았다. 날씨가 좋은 데다 병해충 발생이 적어 과잉공급됐다는 게 농식품부 설명이다. 예년처럼 재배면적 조정 실패가 가격 파동 진원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농민들은 정부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까.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게 성난 농심이다. 지난 1월 양파 가격(도매)이 ㎏당 618원으로 예년(1019원)보다 낮아 양파 가격 폭락의 경고등이 켜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응책을 내놓지 않아 이 같은 사태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다.

양파 가격 파동을 막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공급 과잉이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으로 시장에서 격리하면 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올해의 경우 양파 가격 파동의 주범은 공급 과잉된 19만8000t이다. 정부는 산지 폐기와 비축 수매 등을 통해 이 물량만큼 조기에 시장 격리를 해야 했다. 수확기에 산지 폐기나 소비촉진운동을 벌이면 때는 이미 늦다. 무안 양파 농가 이모씨는 “다 자란 양파를 수확하는 날에 산지 폐기도 같이했다”며 “적어도 석 달 전에 폐기했다면 인건비와 농약, 비료대 등 생산비도 들지 않고 공급과잉도 없고 얼마나 좋았겠냐”고 안타까워했다.

‘풍년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올해처럼 양파와 마늘 농사가 풍년이지만 오히려 작물 가격이 폭락하는 경우를 말한다. 수요와 공급이 비탄력적인 농산물은 가격 폭락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생산단계에서 양을 조절하고 작황 상황을 관측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 풍년이 들면 풍년가를 마음껏 부를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

한현묵 사회2부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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