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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필동정담] 음모론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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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주 50주년을 맞은 인류의 달 착륙과 관련해 한때 음모론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달 표면에서 찍은 사진이나 미국 성조기의 펄럭임 등을 볼 때 세트장을 만들어 날조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국내의 한 유명인사도 "아폴로11호가 지구중력을 벗어날 땐 엄청난 연료통을 매달고 출발했는데 달착륙선에는 왜 달중력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연료통이 안 보이냐"며 날조설을 거들기도 했다. 대개 음모론 근거라는 게 전문가가 들으면 쓴웃음 지을 얘기지만 일반인이 듣기엔 그럴싸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인간 세상에 그런 혹세무민은 언제나 있다. 4차 산업 첨단과학이 폭발하는 오늘날에도 '평평한 지구론' 같은 황당한 주장들이 버젓이 떠도는 게 현실이다. 우리 시대의 사회체제가 "지구는 돈다"고 했다가 죽을 뻔했던 갈릴레이 때와 다르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천만다행이다. 문제는 음모를 꾸미는 자들에겐 숨은 의도가 있다 해도 그걸 믿는 대중을 탓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근간인 천부적 인권에는 역설적이게도 헛소리를 주장하거나 헛소리를 믿을 수 있는 자유가 핵심요소다. 올바르고 현명해 보이는 선택만 할 수 있다면 그건 제대로 된 자유가 아니다. 헉슬리가 그린 '멋진 신세계'는 태어날 때부터 모두가 행복하도록 짜인 세상인데도, 그 속에서 "나에게 불행해질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고 비효율적이고 때론 멍청한 시스템이다. 온갖 사악한 주장과 선동이 난무하고 거기에 대중이 휘둘린다 해도 이를 차단하고 억압할 방법이 없다. 사회적 네트워크인 SNS는 집단지성보다 집단광기를 만드는 선동 창구로 더 자주 악용되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딱 한 가지다. 비록 당장은 어리석어 보일지도 다수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일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만 그런 장기적 관점을 가지려면 모두가 엄청난 인내심과 희생정신을 가져야 한다. 케인스의 말처럼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요즘 북핵, 원전, 최저임금 논란에 이어 또다시 불붙는 시대착오적 친일논쟁을 보며 떠올리는 단상이다.

[이동주 비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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