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글로벌 아이] 베이징과 프라하의 불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지난 17일 중국 외교부 브리핑장. 겅솽 대변인의 제재 발언에 귀가 솔깃했다. 국가나 기업이 아닌 도시를 겨냥한 제재여서다. 겅 대변인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겨냥해 “악랄한 표현으로 중국 인민의 감정을 상처입혔다”며 “서둘러 정책을 바꾸길 충고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특권’ 같던 제재를 중국·일본이 따라 배우는 요즘이지만 도시 제재는 낯설었다. 프라하 시장의 페이스북부터 찾았다. 즈데넥 흐리브(38) 시장은 18일 “중국이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약속한 프라하 필하모니 투어를 폐기한 것은 중국이 신뢰할만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아님을 보여준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4월 밀로스 제만(75) 체코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합의했던 직항로 개설을 중국이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는 기사도 링크했다. ‘중국에 반항한 체코 시장’이란 영국 가디언지 기사도 보였다.

중앙일보

글로벌 아이 7/23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이징과 프라하의 불화와 달리 중국과 체코의 정상 외교는 황금기다. 제만 대통령은 2015년 천안문 승전 열병식에 참석한 유일한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이었다. 시 주석은 이듬해 수교 67년 만의 첫 방문으로 화답했다. 제만 대통령은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1·2차 정상회담과 상하이 1차 국제 수입박람회까지 개근했다.

지난해 11월 해적당 소속 흐리브 프라하 시장이 취임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제만의 친중 노선 대신 바츨라프 하벨 전 대통령의 친티베트·대만 외교 노선을 따르면서다. 흐리브는 티베트 독립 봉기 60주년이던 지난 3월 망명정부의 설산사자기를 게양했다. 곧이어 대만을 방문했다. 최근에는 대만인 보이스피싱 범죄자의 중국 송환을 거부했다. 15일에는 프라하를 방문한 대만 입법회 의원을 만나 “체코의 젊은 세대는 인권에 관심이 많다”며 “해적당은 청년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중국에 맞서는 결기가 미국을 능가한다.

프라하는 홍콩과 손잡는 분위기다. 매개는 이른바 ‘존 레넌 벽’이다. 1980년 피살된 비틀스의 존 레넌을 그린 프라하의 레넌 벽은 1989년 벨벳 혁명을 거치며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과 승리의 상징이 됐다. 프라하의 반(反) 공산주의 정서는 중국 최고 지도자가 체코 방문을 기피했던 이유다. 2014년 ‘우산혁명’ 당시 레넌 벽이 홍콩으로 건너왔다.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를 거치며 홍콩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통일전선에 노련한 중국은 “멋대로 중국·체코 관계를 파괴하지 말라”며 흐리브 시장과 제만 대통령의 틈을 공략한다. 사드 배치 당시 한국과 비슷하다. 프라하와 베이징의 불화가 어떻게 귀결될지 주목된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