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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권근영의 숨은그림찾기]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물 없는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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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으며 까르르 웃고, 수건을 깔고 누운 노부부는 서로의 등에 썬크림을 발라줍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두 달 전부터 생긴 ‘물 없는 해변’입니다. 이 ‘해변’의 피서객들은 해파리와 비닐봉지, 화산 폭발, 기후와 지구 환경의 변화에 대한 노래를 이어갑니다. “내가 죽거든 새도 동물도 산호초도 없는 텅 빈 지구에 남겠지” “올해 바다는 숲처럼 녹색이 됐어” 같은 가사입니다.

인공 해변은 베네치아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찾은 옛 무기창고 건물에 있습니다. 방문객은 위층 데크에서 ‘바캉스족’들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관객이 들이대는 카메라에도 아랑곳없이 수영복 차림 가수들은 천연덕스럽게 피서객을 연기합니다. 세계 미술계의 반짝 성지가 된 창고, 제58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리투아니아관입니다. 2년에 한 번 미술의 최첨단을 전시하는 이곳에서 30대 중반 작곡가·극작가 등이 만든 오페라 ‘태양과 바다’ 공연이 일주일에 단 두 번, 한 번에 8시간씩 열립니다. 기후 변화의 괴기스러움을 쾌활하게 노래한 이 작품으로 리투아니아는 최고의 국가관에 주는 황금사자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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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태양과 바다’. 권근영 기자


최근 남프랑스의 수은주는 46도까지 올랐고, 이탈리아에는 사과만 한 우박이 쏟아졌고,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는 폭우로 이재민이 속출했습니다. 이러니 지구 온난화를 다룬 이 전시는 영화 ‘기생충’ 속 표현처럼 “참으로 시의적절”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볼 수가 없는 퍼포먼스인 덕분에, 공연 종료 직전인 토요일 오후 6시 무렵, 전시장 앞에는 줄을 선 관객들이 들여보내 달라 간청합니다. 훈계하기보다는 유머가 넘치는 표현법 덕분에 방명록에는 “이런 체험이라니, 예술이 생생해요” 같은 감상이 넘칩니다. 수상작이 반드시 최고의 작품이랄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시점에 눈여겨봐 둘 만한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베네치아에서>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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