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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한겨레 프리즘] 손바닥 마주 치기 /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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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제훈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평안북도 신도군의 드넓은 갈밭에 조선인민군 항공기가 떴다. 신도군은 비단섬·황금평·서호섬 등 압록강 하중도로 이뤄진 북한의 서북쪽 끝이다. 5대 경제특구의 하나인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가 있다.

북·중 접경 지역에 인민군 항공기가 왜 떴을까? 신도군 갈밭을 “주체적인 화학섬유원료기지로 만들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침에 따라 ‘비료 주기’에 인민군 항공기가 동원된 것이다. 북한 최고 권위지인 <노동신문>은 이 소식을 6월9일치 1면에 실었다. <노동신문> 1면의 ‘비료를 뿌리는 인민군기’ 사진은 ‘군사국가 북한’에서 전례 없는 사건이다.

요즘 인민군의 구호는 “인민군대가 조국보위도 사회주의 건설도 다 맡자”다. 지난해 5월18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7기 1차 확대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했다.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직후이자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때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군수공업 부문에서는 (2018년) 농기계와 건설기계, 협동품과 인민소비품들을 생산했다”며 “경제건설을 적극 지원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인민군 창건 71돌인 2월8일엔 인민무력성에서 군단장·사단장·여단장을 모두 모아놓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의 관건적인 해인 올해에 인민군대가 한몫 단단히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리하여 군수공장에선 농기계와 건설기계를 만들고, 인민군은 건설현장과 농장에서 일한다. ‘3대 국책 건설사업’의 주력도 인민군이다.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는 지난해 5월 풍계리 핵시험장 폐쇄 이후 건설 주체가 민간에서 인민군으로 바뀌었다.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건설사업은 특수전사령부가 맡고 있다. ‘삼지연군 꾸리기’ 건설사업은 민·군 합동이다. 소식통은 “인민군 수십만명이 경제 현장에 투입됐다고 봐도 된다”고 전했다.

모두 김 위원장의 선택이다. 서로 얽힌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2018년 4월20일)에서 채택한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이다. 김 위원장은 “오늘 우리 당에 있어서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2차 초급 선전 일군 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 <노동신문> 3월9일치 1면)거나 “모든 힘을 경제건설에 집중”(4월12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 시정연설)하자고 거듭 강조한다.

둘째, 지난해 남북·북미·북중 정상회담에 따른 “지역 정세의 안정과 평화”(신년사)의 효과다. ‘쌍잠정 중단’과 9·19 남북 군사 합의가 중요하다.

셋째, “전대미문의 제재와 봉쇄” 견디기다. <노동신문> 13일치 1면에 실린 당 이론지 <근로자>와 공동논설은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했다.

넷째, 당 우위 체제 복원에 따른 군 위상 조정(국가·사회의 지도역량→당의 지도를 받는 무력단위)의 효과다. “북한의 군수공업이 사상 처음으로 인민경제발전 전략에 종속됐음을 보여주는 국가전략의 우선순위 조정”(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다.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한 헌법은 전문의 “선군사상”을 삭제했다.

‘경제 건설에 투입된 인민군’의 앞에는 궁극적으로 두 갈래 길이 있다. 삽을 내려놓고 다시 총을 손에 드는 길, 상당수가 군복을 벗고 아예 ‘경제일꾼’이 되는 길이 그것이다.

지구인의 바람은 전자가 아니다. 후자가 현실이 되게 하자면,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외부 환경이 개선되기를 희망한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6월27일 한-중 정상회담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전언)에 화답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함께 ‘쌍잠정 중단’의 양대 축인 ‘한·미 군사연습 중단’에 한·미 양국 정부가 더 적극적이어야 할 이유다.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이, 한반도 평화 과정은 상호 배려 없이는 길을 열 수 없다.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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