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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韓日갈등 틈타…러·중, 동해까지 영향력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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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 군용기, 독도영공 도발 ◆

매일경제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대사대리가 23일 서울 외교부 청사로 초치되고 있다(왼쪽 사진).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도 이날 외교부로 초치됐다.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는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과 중국 군용기의 방공식별구역 진입에 대해 항의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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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중국이 23일 동해의 한일 방공식별구역(ADIZ)에 군용기를 들이밀고, 러시아의 조기경보기가 한국 영공을 두 차례나 침범한 것은 명백하게 '의도된' 도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들어 러시아와 중국의 군용기는 각각 25차례, 13차례에 걸쳐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다. 이에 따라 러·중이 동해 인접 해상을 사실상 작전구역으로 설정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군 당국 안팎에서는 양국이 앞으로 이처럼 동해에서 합동훈련 형식의 위험한 비행을 반복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러·중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면서 한·미·일 3국 안보협력 체계를 흔들기 위해 동해, 그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독도 상공을 선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강제징용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양국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우려할 상황으로 번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미·일 안보협력의 가장 '약한 고리'인 동해에 군용기를 보내 합동비행을 했다. 이날 러·중은 군용기로 한일의 ADIZ를 한꺼번에 침범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분명한 군사 도발인 영공 침범까지 강행하며 한·미·일 대응 체계의 취약점을 찾으려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관계자는 "러시아는 극동 지역 안보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상대국은 결국 미국"이라며 "특히 미·일 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일본이나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러시아와 중국 간 군사협력은 최근 강화되고 있고 합동군사훈련도 높은 수준으로 빈번하게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를 서태평양의 실질적 제해권을 가진 미국과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러·중 간 전초전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를 위해 러·중이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미국의 핵심 군사동맹국이자 갈등을 겪고 있는 한일에 대해 계획된 도발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태평양은 매우 넓어 중국과 미국의 이익을 모두 담을 수 있다"며 해양 진출을 위한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러시아 역시 태평양으로 향하는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의 블라디보스토크 말고도 북한의 나진항 개발·운영에 공들이는 등 차항출해(借港出海·항구를 빌려 바다로 나간다)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우리 대비 태세와 주한미군 움직임을 점검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 시기적으로 한국이 취약해 보여 그 계기를 활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러·중의 동해상 무력시위가 다음달 실시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겨냥한 대미 압박 전술이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미국이 이란을 견제해 호르무즈해협에서 연합 전력을 구성해 대처하는 데 반대하는 중국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미국을 압박한 행동일 수 있다는 관측도 힘을 받는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 양국 고위 인사들 간 빈번한 접촉뿐 아니라 군수 분야 협력도 강화하는 모양새다. 러시아는 2015년 11월 중국과 Su-35 24대 수출(약 20억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또 작년 4월부터 S-400 미사일을 중국에 본격 인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중은 앞으로 미국은 물론 미국의 군사동맹국들을 대상으로 이번처럼 다양한 방식의 무력 시위와 압박 전술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급속하게 강화되는 미·일, 러·중 간 협력 체계와 한반도 상황이 점점 20세기 초반의 러·일전쟁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는 의견도 잇따른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했지만 중립을 지킬 힘이 없어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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