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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日 보복·실물경제 약화로 복합위기…정책 전면 전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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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정면충돌 ◆

매일경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주최한 `한일 관계를 통해 본 우리 경제 현황과 해법` 특별대담에서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왼쪽부터)이 일본 경제보복 대응 방안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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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은 탄탄한 실물경제가 뒷받침됐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다르다. 국내 경제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을 검토해야 할 때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이번 일본 수출 규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실물경제 약화와 겹쳐 복합적인 위기로 번질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윤 전 장관은 이날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한일관계를 통해 본 우리 경제 현황과 해법' 특별대담에서 이같이 지적하며 빠른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이날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일본 수출 규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운을 뗀 뒤 "사태 극복 노력과 함께 국내 경제 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분업 체제를 복구시키는 게 제일 시급하다"며 "이 사태가 중·장기화되면 대한민국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고 우려했다.

윤 전 장관은 주 52시간 근로제 등 최근 정부가 도입한 정책들이 대외 경제 환경 변화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대표적 예로 들었다. 그는 "주 52시간 근로제도 한일관계 문제가 발생하자 당장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면서 "소재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R&D) 분야는 시간이 정말 부족하기 때문에 업종별·규모별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중장기적으로 부품·소재산업 육성을 위한 기초과학 분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이번 사태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더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도 내놨다. 윤 전 장관은 2009년 2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정책 책임자로서 경제위기에 대응했던 인물이다. 윤 전 장관은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는 탄탄한 실물경제가 바탕이 된 상태에서 유동성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어서 금융과 외환 정상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제조업 중심의 실물경제 약화와 겹쳐 복합적인 위기로 나타나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경제의 추세에 뒤처진 규제로 인해 혁신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도 지적했다. 윤 전 장관은 "공유경제가 세계적 대세인데 '타다'가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 어려움을 입증한다"며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개혁과 규제 철폐의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참으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 원장은 외교적 측면에서도 한일관계에서 발생했던 과거 갈등과 양상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그는 2013년부터 4년간 국립외교원 원장으로 최장기 재직한 한일관계 전문가다.

윤 전 원장은 "과거 발생한 역사 문제는 우리가 항상 도덕적 우위에서 공격하는 입장이었다면, 이번에는 조약의 해석 차이이기 때문에 국제법적 문제가 돼 버렸다"며 "일본이 그 과정에서 공세를 하는 상황으로,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정부가 특사 파견 등 외교 채널을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한일 간 조약 때문에 개인청구권을 현실적으로 일본에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 전 원장은 "특별법을 통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함께 참여하는 재단을 조성하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일본이 자발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가능성은 없으므로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우선 나서고 일본 기업이 도의적 책임을 느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 전 원장은 최근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 철회를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당장 WTO를 통해 부당함에 대해 알리고 제소해야 하는 건 맞는다"면서도 "최근 들어서 WTO 역할이 상당히 위축돼 있고, 미국 중국 일본 같은 강대국들이 WTO 룰이 아닌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WTO를 통한 해결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일본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경제보복을 하는 부당성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국제적인 항의를 할 필요가 있다"며 여론 조성을 위한 노력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대담 진행을 맡은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일본의 조치가 갑작스럽다는 여론이 있지만 오래전부터 심각한 상황을 알리는 신호가 여러 번 있었다"며 "우리 기업과 한국 경제가 엄중한 시기를 맞게 된 만큼 이번 대담이 대내외 위기 극복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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