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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리뷰]영화 ‘레드슈즈’…뭔가 아쉬운 ‘외모지상주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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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동화 속 인물들의 성격과 외모를 비튼 <레드슈즈>. 라인프렌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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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영화를 보고 평가해 달라.”

2017년 한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진은 티저 예고편에 쏟아진 비판에 이같이 대응했다. 예고편에는 여성이 옷을 벗는 모습을 훔쳐보는 남성 등이 묘사돼 ‘외모가 아닌 진정한 아름다움’을 내세웠다는 영화의 메시지와 배치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제작진은 해당 예고편을 삭제하고, 영화의 취지에 맞지 않는 마케팅이었다고 사과했다.

2년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완성된 영화’, <레드슈즈>가 25일 베일을 벗는다. 제작진의 설명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메시지가 중심이 됐다. 사전에 문제가 된 장면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 호평만 쏟기엔 어딘가 불편하다. 왜 그럴까.

<레드슈즈>는 ‘백설공주’ ‘빨간 구두’ 등 다양한 원작 동화에서 캐릭터 및 설정을 적극적으로 빌려와 과감히 비틀었다. 통통한 체형의 ‘스노 화이트’ 공주는 전형적 미인과는 거리가 있고, 잘생긴 일곱 왕자는 저주를 받아 초록빛의 ‘일곱 난쟁이’로 변했다. 예쁜 공주와 잘생긴 왕자를 둘러싼 동화 속 편견을 치받기 위해 일부러 동화를 끌어들인 것이다. 영화는 스노 화이트가 마법의 빨간 구두를 신고, 절세미인 ‘레드슈즈’로 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영화 속은 현실보다도 더 냉혹한 외모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다. 난쟁이들이 저주받은 까닭은, 외모만 보고 공주를 마녀로 착각해서다. 난쟁이들이 레드슈즈를 열심히 돕는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와 입맞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레드슈즈는 바뀐 외모로 인해 온갖 도움을 받지만, 본래 외모로 돌아온 순간 별 이유도 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그런데 이 지독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외모에 대한 편견이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레드슈즈다.

영화는 난쟁이에게도 편견 없이 다가가 “못생기지 않았다”고 말하는 레드슈즈의 모습을 강조한다. 그의 진짜 아름다움은 변한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모지상주의에서 자유로운 내면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내면이 아름답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이미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 현실에서 말이다.

영화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면서도 내면을 그리는 데 소홀했다. ‘외모지상주의는 나쁘다’는 구호에만 집중할 뿐, 정작 이 구호를 만들어 낸 사회적 변화에는 무심했기 때문이다. 얼핏 진취적인 여성처럼 보이는 레드슈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래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내면이 보인다. 난쟁이 남성은 사랑할 수 있지만, 통통한 여성인 자신은 사랑할 수 없다는 그의 무의식에서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외모 잣대를 드리우는 젠더 편향적 시선이 느껴진다. ‘제모하는 인어공주’ ‘머리치장하는 라푼젤’과 같은 대사에서도 무심함에서 비롯한 성차별적 편견이 보인다.

<레드슈즈>는 2007년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한다.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대상을 수상한 시나리오에 클로이 머레츠 등 할리우드 배우와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출신인 김상진 감독까지 참여하며 전 세계 시장을 노리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구상된 때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세계의 관객들은 한층 더 올바르고 섬세한 영화를 원하게 됐다. 이 ‘완성된 영화’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바로 이 간극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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