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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톈안먼 사태 유혈 진압한 리펑 전 중국 총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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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입한 인물 중 한 명인 리펑<李鵬·사진>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2일 별세했다.

23일 오후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리 전 총리가 전날 밤 11시 11분 베이징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향년 91세. 신화통신은 리 전 총리가 병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었다고 전했다. 구체적 병명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신화통신은 "리펑 동지의 일생은 혁명의 일생, 투쟁의 일생, 찬란한 빛의 일생이었으며,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공산주의 사업을 위해 분투한 일생"이라고 평했다.

리 전 총리는 2008년부터 건강이 나빠졌으며 방광암으로 투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차례 사망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리 전 총리는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 시절의 2인자이자 중국 공산당 강경파의 상징적 인물이다. 1987년 11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이듬해 4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총리에 임명됐다.

리 전 총리는 1989년 4월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시위대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 6월 3일 밤 당시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승인 아래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톈안먼 광장에 운집한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서구권에서는 그에게 ‘베이징의 학살자(butcher of Beijing)’란 악명을 붙였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톈안먼 사태 30주년을 맞은 해이다.

그러나 리 전 총리는 톈안먼 시위 진압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1998년 3월엔 9기 전인대에서 전인대 상무위원장에 선출돼 2003년까지 재임하며 권력을 누렸다.

리 전 총리는 한·중 수교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중 수교 2년 후인 1994년 10월 중국 총리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 그가 한국을 방문한 지 1년 후인 1995년 10월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했다.

리 전 총리는 아내 주린(朱琳)과의 사이에 아들 둘, 딸 하나를 뒀다. 장남 리샤오펑(李小鵬)은 과거 전력회사 화넝그룹 이사장을 맡았으며 2016년 중국 국무원 교통운수부 부장(장관)에 임명됐다. 딸 리샤오린(李小琳)은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회장을 지냈다.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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