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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보호와 처벌 사이 : 소년사법 보고서](2)보호관찰관 1명에 소년범 114명…‘사회적응 교육’ 겉핥기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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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재범률

정원 대비 수용률 111%, 11곳 중 8곳이나 ‘과밀’…“누가 누군지 기억도 못해”

보호처분, 사실상 이름뿐…5명 중 1명 2년 내 재입

경향신문

소년원에 수감됐다 ‘졸업한’ ㄱ군은 “놀러 갔다 왔다”고 했다. ㄱ군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수금책으로 가담했다가 소년원 송치처분을 받았다. ㄱ군은 평소 도박도 즐겼다. 쉽게 돈을 벌고 잃었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년원에서 같은 처지의 친구들도 만났다. ‘멘토’의 교육을 받았지만 마음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깊이 반성한 일도 없다. 소년원은 너무 붐볐다. 자격증은 아무런 도움이 안됐다. 오히려 ‘본전이 두둑해야 도박을 해 돈을 벌 수 있다’거나 ‘수금책으로 일해 잡힌 것이니 이젠 사람을 모아 직접 해보자’는 식으로 생각했다.

ㄱ군 사례는 반승환 소울브릿지교회 목사가 접한 소년원 수감 경험 아동들의 이야기를 종합한 것이다. 반 목사는 “매달 100명 정도 아이들을 만나는데, 밖으로 나오는 당일 사고 치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소년원에서 억압된 채로 갇혀 지내는 동안 잘못된 행동에 처벌받는다는 자각도, 충분한 반성도 하지 않죠. 그런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면 억눌린 걸 분출하려 합니다. 소년원에서 배운 범죄 수법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일도 흔합니다.”

소년부 재판에서 8~10호 보호처분을 받는 아동들은 사회 복귀 교육시설에서 생활한다. 소년원이 대표적인 시설이다. 아동들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게 목적이라 ‘처벌’ 대신 ‘보호처분’이라고 한다. 정작 제대로 된 보호나 재교육을 받지 못한 채 또다시 각종 비행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범죄백서’를 보면, 범죄소년과 촉법소년을 가리키는 소년범은 2008년 12만6213명에서 2017년 7만2759명으로 10년간 42.4% 감소했다. 소년원 송치처분을 받은 10~19세 미만 아동 중 새로 수용된 인원은 2008년 1732명에서 2012년 3429명으로 증가한 뒤 감소해 2017년 2450명으로 낮아졌다. 전체적인 소년범죄는 감소 추세다.

반면 한 번 잘못을 저지른 뒤 또다시 보호처분을 받는 재범 수치는 나빠졌다. 2013년 출소자 중 1년 이내 소년원에 재입소한 비율은 10.1%(289명)였다. 2014년 9.5%(228명)로 약간 감소한 뒤 2015년 12.0%(245명)로 다시 증가했고 2016년 14.0%(287명)까지 늘었다. 2년 이내 재입소율은 2015년 출소자의 19.8%(403명)에 달했다.

재입소율 증가는 보호처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년원은 직업훈련이나 중·고교 과정 등 학교나 사회로 복귀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지만,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조정과 품행교정’이라는 소년법의 원래 목적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동인권단체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보호처분이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다. 소년원 퇴원 아동들의 사회 복귀 등을 제대로 관리할 인력이 없다.

장·단기 소년원 송치처분이나 4호 이상의 보호처분을 받는 경우 보호관찰이 동반되지만, 보호관찰관 수는 부족하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에 따르면, 소년 전담 보호관찰관은 지난해 기준 373명이다. 이들이 4만2514명의 대상 청소년을 관리하므로 1인당 평균 114명을 맡는 셈이다.

보호관찰관 권모씨는 “170명을 관리해 어떤 아동들이 있는지 다 기억하지도 못한다”며 “컴퓨터가 없으면 담당자도 담당 아동에 대해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낮 시간대에 근무하는 보호관찰관과 밤에 주로 활동하는 아동들은 서로 만나기도 힘들다. 예산 문제로 업무용 휴대전화를 모든 보호관찰관에게 지급할 수 없어 대부분의 보호관찰관은 사무실 전화를 사용한다. 업무시간이 끝나면 아동들을 관리할 수가 없다. 인원 부족으로 주야간 교대 근무 등은 불가능하다. 개인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업무시간 외에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보호관찰관이 아동들과 전화통화를 하는 것도 어렵다.

반 목사는 “소년원에서 나오면 적어도 3~4개월은 누군가 아동들을 담당해 지켜봐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반 목사는 “사명감을 갖고 희생하는 보호관찰관에게 의지해야 하는 잘못된 구조”라며 “교대 근무를 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면 좋지만 이마저도 사람이 부족해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소년원 등에서 이뤄지는 교육 역시 수용인원이 너무 많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30일 기준 전국 소년원 정원 대비 수용률은 111%다. 2015년(124%), 2016년(122%), 2017년(129%)보다 낮아졌지만, 2014년(99%)보다는 높다. 전국 11개 소년수용시설(소년원 10개·소년분류심사원 1개) 중 8개가 과밀 수용에 해당됐다. 서울·부산·대구·광주 소년원과 서울소년분류심사원 등은 수용률이 2014년부터 매년 100%를 넘었다.

수용인원이 너무 많으니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이나 개인별 교육은 하기 힘들다. 10호 처분을 받아 소년원에 수용된 ㄴ군(19)은 “나가서 뭐 할지 계획은 세워주지 않고 다짜고짜 자격증만 따라고 해 지적이랑 측량 등 건축자격증을 2개 땄다”며 “‘대학에 가라’고 해서 안 간다고 하니 ‘할 것 없으면 군대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아동들이 사회로 다시 복귀하려면 보호처분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미아 국제아동인권센터 연구원은 “아동들 문제는 인력만 충원돼도 해결될 게 많다”며 “관리할 사람은 부족한데 아동들은 너무 많아 제대로 된 교육이나 치료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 연구원은 “가정이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면 지역사회가 해야 하고, 그게 안되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며 “가정이 보호하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국가의 아이’이기 때문에 법원,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 여러 기관이 협력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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