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당 4만6천원에 사들인 임야 "곧 개발된다"며 20만원씩 분양
모든 소유주 동의받아야 처분 가능…재산권 행사 제약 '불 보듯'
기획부동산 타깃 된 세종시 야산 |
(세종=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 "저 산은 2004년 필지를 나눠 소유한 사람만 300여명인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발은커녕 재산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어요"
23일 세종시 장군면 은용리에서 만난 A 씨는 "면 지역 임야(산)를 물건으로 한 기획부동산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인이 세종시 임야를 여러 건 샀다는 말에 꼬불꼬불한 농로를 10분 남짓 운전해 현장에 도착한 A 씨.
기획부동산을 사들인 것은 아닌지 살피려 등기부등본과 지적도를 뽑아 확인한 A 씨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야산을 수백개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쪼개 놓은 지적도를 보여주며 "소유주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개발하겠냐"며 혀를 찼다.
소유자 300명인 세종시 야산 지적도 |
건설업계에 종사 중인 A 씨는 인근 야산을 가리키며 "주민에게 물어보니 산 아래 논이 3.3㎡당 25만∼30만원에, 비닐하우스 대지가 35만원에 거래된다고 하더라"며 "그런데 고압선 철탑이 있는 산 정상부를 27만9천원에 팔고 사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땅을 산 A 씨 지인은 "부동산업체 대표가 전 소유주에게 명의를 이전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분을 팔았다"며 "나와 계약할 때는 업체 대표가 변경됐음에도 전 대표 명의로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기획부동산 업체의 광고문 |
이렇게 정부세종청사가 입주한 세종시 주변 지역에서 각종 개발 호재 등을 미끼로 야산을 수백 필지로 쪼개거나 지분을 나눠 분양하는 기획부동산이 활개 치고 있다.
기획부동산 업체들은 금남면과 장군면을 거쳐 연서면, 전의면 등 세종시 외곽으로 손길을 뻗치고 있다.
이들은 시중 은행 것과 비슷한 로고와 은행 이름이 포함된 OO토지정보, OO경매 등 이름을 쓰면서 투자자를 현혹하고 있다.
한 업체가 거래한 전의면 달전리 임야 등기부 등본을 보면 업체는 9만9천471㎡를 13억8천410만원에 사들였다.
공시지가가 3.3㎡당 7천400원에 불과한 땅을 평균 4만6천원에 사들인 뒤 투자자들에게는 19만9천원에 분양했다.
이 땅을 분양받은 B 씨는 "인근에 골프장과 산업단지가 들어서기 때문에 이곳도 곧 개발된다고 했다"며 "앞으로 막대한 개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투자를 부추겼다"고 말했다.
등기부등본상 지분을 공유한 투자자만 300여명이다.
B 씨는 연서면 청라리 야산도 3.3㎡당 12만 9천원에 샀다.
등기부 등본에는 117명이 지분을 공유한 것으로 나온다.
업체들은 세종뿐 아니라 경기 과천·파주·성남·오산 등 수도권 물건도 B 씨에게 소개했다.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의 야산은 7월 현재 지분을 공유한 투자자만 3천900여명이 넘는다.
온라인 등기소에 회원 가입한 뒤 지번만 치면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획부동산 '주의' |
문제는 이들 업체가 전문 변호사 등의 자문에 따라 영업을 하기 때문에 행정당국이나 경찰 단속이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수년 전 금남면 야산에 대한 지분 쪼개기가 성행할 때 경찰이 수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행정당국과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사이 전국적으로 피해자만 늘어나는 모양새다.
만에 하나 개발 기회가 오더라도 토지주가 수백명에 이르다 보니 일관된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한 공인중개사는 "기획부동산은 모든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야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재산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며 "자식 때라도 투자이익을 환수할 것이라는 기대는 그야말로 망상"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시도 지난해 11월 지분 쪼개기 토지거래로 인한 재산상 피해를 경고하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공유지분 토지(임야)는 토지공유자 전원 동의를 거쳐 '토지분할 제한 규정'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따른다"며 "토지거래를 할 때는 토지 이용 계획 확인서, 토지(임야) 대장 및 등기 사항 전부 증명서(옛 등기부 등본) 등을 자세히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jun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