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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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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기적 같은 임신의 씨앗은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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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생명을 만든다③ 마리아플러스 김상돈 부장



중앙일보

‘조기 폐경’. 2년 전 처음 내원한 여성이 갖고 온 진단서에 적혀 있던 진단명이었다. 난소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돼 임신이 어렵다는 진료 의사의 소견이었다. 우선 난소 기능에 대한 검사를 다시 해볼 것을 권했다. 검사 수치는 너무도 냉정한 0.01이었다. 환자는 실망한 기색 없이 내 설명과 계획을 경청했다.

일단 고용량의 호르몬 주사를 사용해 난포를 키워 보기로 했다. 난소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다음달에는 경구 호르몬제를 사용하는 저자극법으로 시도하기로 했다. 다행히 경구약에는 반응이 있어 한 개의 난포가 자랐고 여기서 난자를 채취했다. 그러나 채취된 난포액에 난자는 없었다. 소위 ‘공난포’였다. 몇 번의 배란 유도와 난자 채취를 시행하다 보니 2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생리를 하게 됐다며 외래를 찾아왔다. 초음파로 확인해 보니 한 개의 난포가 덩그러니 보였다. 이틀 뒤 처음으로 한 개의 난자를 얻었다. 2년 동안 한 번도 얻지 못했던 난자를 처음으로 채취하게 된 것이다. 난자 상태는 괜찮아서 수정이 잘됐다. 이번 주기에는 자궁 내막이 준비돼 있지 않아 냉동 보관해 놓고 이후에 이식하기로 했다.

결국 냉동 보관한 한 개의 배아로 임신을 시도하기로 했다. 다행히 자궁 내막 상태는 좋은 편이었고 해동한 배아의 상태도 양호했다. 조심스럽게 자궁 안에 넣고 열흘을 기다렸다. 열흘 뒤 피검사를 위해 내원한 그분의 표정이 밝았다. 임신 테스트기에 희미하게 두 줄이 나왔다는 것이다. 2주 뒤 자궁 안에 예쁘게 자리 잡은 동그란 아기집을 볼 수 있었고 태아의 심박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적처럼 임신을 가능하게 한 것은 최첨단 의학 기술이나 최신 신약이 아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기다림이었다고 생각한다.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난임 환자에게 난임 의사는 페이스메이커가 돼야 하지 않을까. 마라톤 코스를 분석하고 전략을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치지 않고 또 욕심내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함께 달려주는 페이스메이커가 그들에게는 꼭 필요하다. 최선을 다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희망의 기다림으로 채워 보길 권한다. 조급해하지 않는 희망의 마음이 생명을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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