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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정치권에서 이순신 리더십을 찾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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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상황 어려울 때마다 부각… 이순신 리더십 뜨거운 이슈로



경향신문

2016년 서울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가서명 강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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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에 ‘이순신’이라는 단어를 검색어로 넣은 결과, 7월 한 달 동안 834건의 관련 뉴스가 쏟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5월 247건, 6월 275건과 비교하면 한 달 동안 무려 세 배를 뛰어넘는 기사가 나왔다. 월간 단위에서 주간 단위로 검색해보면 7월 둘째 주에 ‘이순신’ 관련 기사량은 최고조에 달했다. 한 주당 50건이던 이순신 장군 관련 기사는 7월 둘째 주에 258건이 나왔다. 이후 7월 마지막주까지 매주 200건 안팎의 기사가 보도됐다.

문 대통령 저도 방문 또다시 언급

7월 둘째 주는 일본이 7월 초에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제한조치를 한 후 이순신 장군이 정치권에 화두로 등장한 시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12일 전남도청의 블루이코노미 경제 비전 선포식에서 “전남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이 서린 곳”이라면서 “전남의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이순신 장군을 언급한 것은 한·일 경제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7월 30일 경남 거제시 저도를 방문해 이순신 장군을 또다시 언급했다. 오는 9월 시범개방을 앞둔 저도에서 문 대통령은 “저도 일대 바다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께서 첫 번째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이 있었던 곳”이라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이순신 리더십은 ‘항일’이라는 키워드와 ‘위기극복’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한·일 경제전쟁의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7월 24일 시·도지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오찬 장소로 찾은 ‘거북선횟집’도 화제가 됐다. 공교롭게 선택한 장소가 ‘거북선’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횟집이었다. 이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에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는 자리에 거북선 모형이 등장했다. 청와대 측은 ‘따로 준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날 내내 거북선이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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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검색어로 본 월별 기사 건수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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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카인즈’의 검색 시스템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2014년 뉴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다. 이해 7871건의 뉴스가 나왔다. 월간 단위로 보면 2014년 8월에 2721건의 이순신 관련 뉴스가 보도됐다. 2014년 8월 이전에는 매달 200건가량의 뉴스가 생산됐다. 8월 이후 관련 뉴스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명량>이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명량>은 이해 7월 30일 개봉됐고, 개봉한 지 12일 만에 1000만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모두 1761만명이 관람해 지금까지 역대 최고의 관객수를 동원한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이 영화가 흥행한 배경에는 4월 세월호 침몰이라는 사고가 있었다. 해경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데다, 정치권의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순신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최대 관객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 많았다. <난중일기>를 국역한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위기를 겪을 때 진정한 리더로서 이순신 장군을 찾게 된다”면서 “2014년에는 세월호와 영화 <명량> 때문에 이순신 리더십이 부각됐다”고 말했다.

‘빅카인즈’에서 월간 단위로 검색해 보면 2012년 4월, 2010년 4월, 2009년 4월, 2005년 4월, 2004년 4월에 이순신 기사가 유난히 많이 나왔다. 이순신 장군 탄신일이 있는 4월에 충무공 관련 행사가 많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관련이 있는 시기는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국회 탄핵안 통과 이후다. 당시 노 대통령이 읽었던 책이 <칼의 노래>인 것으로 알려졌다. <칼의 노래>는 김훈 소설가가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를 그린 소설이었다. 소설 <칼의 노래>를 비롯해 영화 <명량>,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이순신 리더십을 21세기 한국으로 끌고 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위기 때마다 이순신 장군이 등장했다. 정조의 개혁통치 시기에도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부각됐다. 일본이 강점의 야욕을 드러내던 시기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주목했다. 단재는 1908년 <이순신전(李舜臣傳)>이라는 전기소설을 발표했다.

1930년대에는 민간 차원에서 ‘이순신 붐’이 일었다. <동아일보>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충무공 묘산이 경매에 부쳐지자 <동아일보>에는 이를 한탄하는 위당 정인보의 사설이 실렸다. 이를 계기로 성금운동이 벌어져 현충사 중건사업이 이뤄졌다. <동아일보>에는 춘원 이광수의 소설 <이순신>이 연재됐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리더십 부각 논란

‘이순신 리더십’은 박정희 대통령 때 또다시 부각됐다. 박 전 대통령은 현충사를 성역화하고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세웠다. 박 전 대통령의 이순신 리더십 부각은 역사적으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데다 일본 관동군 장교 출신이라는 친일 논란을 무마하기 위해 ‘이순신 리더십’을 끌고 왔다는 비판이 많았다. 최진 연구원장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영웅화에는 박정희 우상화라는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말했다.

‘이순신 리더십’이 부각되면 늘 선조의 리더십도 함께 언급된다. 긍정적인 리더십으로는 이순신 리더십이, 부정적인 리더십으로 선조 리더십이 대조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빅카인즈’ 검색에 따르면 ‘선조’와 ‘이순신’을 함께 언급한 기사는 7월에는 96건이었고, 8월 들어서도 8일 현재 40건에 이른다. 최진 연구원장은 “이순신 리더십은 맡은 바 책무를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반면, 선조 리더십은 우유부단과 좌고우면으로 대표된다”면서 “리더라면 선조 리더십의 부정적인 면을 잘 살펴보고 이순신 리더십에서 장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라의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이순신 리더십이 등장하지만, 정치권에서 이순신 장군을 부를 때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진보든 보수든 반대진영에서는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박종평 연구가는 “국민들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에 의지하려고 하지만, 리더는 이순신 리더십을 단지 언급하는 것에만 그치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때문에 국민이 생각하는 이순신 리더십과 리더가 언급하는 이순신 리더십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연구가는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이순신 장군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우리 시대에 맞는 국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진 연구원장은 “보수와 진보, 여야를 넘어서서 모두가 이순신 리더십의 장점을 끌어오려고 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이순신 리더십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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